토종여우

여우는 사악한 동물로 평판났다. 여우에 관한 설화가 거의 다 이렇다. 천년묵어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공동묘지에서 야반에 나타나 밤길 가는 남자를 유혹한 끝에 해를 입힌다는 구전설화가 많다.

여우는 굴속에서 살지만 굴을 직접 파진 않는다. 다른 짐승이 애써 파놓은 굴에 주인이 없는 틈에 들어가 오줌을 싸놓는 등 분탕질을 한다. 주인이 돌아와 보면 정나미가 떨어져 더 살 마음이 없게 된다. 특히 여우의 항문에서 분비된 노린내는 견딜 수 없어 그만 굴을 포기하고 떠나면 여우가 유유히 입주하는 것이다. 오소리 굴이 이런 피해를 곧잘 입는다. 여우가 사악한 동물로 인식된 것은 교활성 때문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산야에 여우가 있었다. 그 무렵의 여우목도리는 값이 꽤나 비쌌다. 머리에서 팔 다리며 꼬리 등 몸체가 그대로인 여우목도리는 목에 둘러 여우 입에 꼬리가 물리도록 됐다. 돈 많은 부인네들의 겨울철 최고 사치품이었다.

그런데 전쟁을 고비로 여우가 사라졌다. 조선호랑이 반달곰 같은 전래 동물과 함께 포화속에 여우도 자취를 감췄다. 토종 여우는 ‘붉은여우’다. 일본산 여우와 북방 여우와의 중간색 형으로 몸체의 윗털이 적갈색이다.

암수 한 쌍이 함께 생활한다. 겨울에 짝을 지어 50여일의 임신기간을 거쳐 초산은 서너마리, 초산 이후에는 대여섯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수컷은 암컷 옆에서 새끼들이 가을철에 독립할 때까지 양육을 거들며 들쥐 산토끼 고슴도치 등 먹이를 사냥해 댄다.

지난달 29일 성남 남한산성 도로에서 발견된 두 살이 채 안된 여우가 서울대공원의 유전자 감식결과 토종인 ‘붉은여우’로 밝혀졌다고 한다. 지난번 2004년 강원도 양구에서 토종 여우가 죽은 채 발견되어 안타깝게 하더니 이번에는 산 토종여우가 나타난 것이다.

궁금한 것은 어디서 어떻게 왔는가 하는 경로다. 국내산이 아닌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녘에서 내려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린 여우가 지뢰밭 투성인 휴전선을 무사히 넘어온 것이 대견하다. 서울대 공원에서 영양식을 하며 안정을 찾는 중이다. 진객이다. 건강하게 자라기 바란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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