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 人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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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性徹) 큰 스님은 종교인이기에 앞서 진정한 성자였다. 마하트마 간디가 평생 최소한의 의식주로 살았듯이 스님 또한 근검절약에 엄격했다. 양말도 손수 기워 신었고 누더기 장삼도 40년을 그냥 입었다. 중생들의 보시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또 늘 남을 생각했다. 불공의 대상이 부처님이 아니라고 했다. 모든 중생이 불공의 대상이었다. 승려들이 목탁 치고 부처님 앞에서 신도들의 명과 복을 빌어주는 것이 불공이 아니라 남을 도와 주는 것이 참다운 불공이라고 강조했다.

“중이란 가족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중생을 앞서 생각하는 성철 스님은 수행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았다. 스님이 되지 않았는데도 참선을 시작한 지 42일 만에 동정일여(動靜一如·앉으나 서나, 말할 때나 말하지 않을 때나 상관 없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의 경지에 들어선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음력 10월1일부터 다음해 1월 31일까지 수행 정진하는 ‘동안거(冬安居)’ 동안 한 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거나 잠을 자지 않았다. 몇 해 동안 밤에도 잠은커녕 고개를 한 번 떨구지 않고 수행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는 그의 꼬리표가 됐다. 수행할 때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고 집중한다고 해서 ‘철 수좌’(참선하는 스님)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한국 불교계에 이바지 한 공도 헤아리기 어렵다. 일제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불교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한국 불교를 올곧게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1947년 청담·자운·성철·향곡·월산·성수·도우·법전·홍경·종수 스님 등과 함께 ‘봉암사 결의’를 단행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데 필요한 규칙(공주 규약)’을 만들고 직접 밭을 갈고 씨를 뿌려 먹을거리를 마련했다. 이와 함께 선(禪)을 중시해온 한국 불교의 맥을 살려 엄격한 수행을 강조했다. 동안거, 하안거 중 꼭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것)을 하게 하고 포기하면 쫓아내 버린 것은 성철 스님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 됐다. ‘실천하는 불교’와 ‘중생에게 다가가는 불교’라는 한국 불교의 역사가 시작됐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의 말씀은 아무도 높이와 깊이를 모른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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