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아니면 모두가 공범이든지.
추석을 앞두고 극장가에 풀리지 않는 산수 문제가 발생했다. 상영작들의 스크린 수를 모두 합하면 국내에 있는 스크린 수의 총합을 훨씬 웃도는 숫자가 나오는 것이다. 덧셈이 잘못됐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추석 대목을 겨냥한 영화들이 27일을 기점으로 모두 개봉했다. 애초 이번 주 개봉작들은 28일부터 관객을 맞을 생각이었으나 조금이라도 빨리, 그리고 많이 관객을 모으려는 욕심들이 모여 은근슬쩍 개봉일이 하루 앞당졌다. 그러다보니 27일까지 일반 시사회 일정을 잡은 몇몇 영화들은 개봉과 함께 무료 시사회가 동시에 진행되는 웃지 못할 상황마저 벌어지게 됐다.
27일 오후 2시 현재 각 영화들이 공개한 상영 스크린 수를 살펴보자.
'가문의 부활' 420개, '타짜' 410개, '라디오 스타' 320개, '잘살아보세' 260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50개, '구미호 가족' 200개, 'BB프로젝트' 172개, '앤트 불리' 103개, '야연' 100개, '무도리' 50개 등이다.
이들 스크린 수를 모두 합하면 2천285개. 문제는 우리나라 전체의 스크린 수가 1천750여 개라는 사실. 작년 말 기준 1천648개에서 극장업계가 9월 현재 스크린 증가 수치라고 내놓은 100여 개를 더하면 그렇다. 한 스크린에서 두 영화를 교대로 상영하는 사례나 현장의 돌발 상황 등을 고려하더라도 영화사들이 내놓은 스크린 수 합계와 실제 스크린 수 사이에 400개 이상 오차가 나는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이들 영화사가 한결같이 "이번 주말에는 스크린 수가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400여 개의 오차도 설명할 길이 없는데, 이번 주말에는 대부분 이보다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할 것이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물론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저마다 공들여 만든 영화를 더 많은 극장에서 상영하고 싶은 욕심이 너무 강하다보니 목표치를 실제인 양 생각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극장가 혈투 속에서 자기 영화가 밀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타짜'가 '410개 스크린 확보'라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추석 최다 스크린'이라고 밝힌 것과 비슷한 시간에 '가문의 부활'이 '420개 스크린 확보'라는 보도자료를 내는 상황이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그 와중에 어떤 영화 배급사는 제작사에 "실제 스크린 수는 ○개지만 대외적으로는 ○○개라고 말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관객 집계와 배급 시스템이 선진화를 향해 가고 있는 시점에서 추석을 앞두고 이를 역행하는 분위기가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함을 안겨준다. 허풍 떨어봐야 결과적으로는 득 될 것 하나 없다는 사실을 영화계는 그간의 숱한 시행착오를 통해 몸소 체득했다. 상황이 절박해진다고 퇴보해서는 안된다. 부디, 페어 플레이합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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