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은 곡식으로 만든 먹거리 중에서 가장 정결한 음식으로 이 중 송편은 추석 차례상에 밥과 국 대신 올린다. 우리 조상들은 햅쌀가루로 반달 모양의 송편을 빚으며 감사의 마음과 다음해를 기원하는 정갈한 마음을 담았다. 요즘은 추석이 아니어도 송편을 먹는 날이 많다. 백일·돌잔치에도, 한식 뷔페에도 송편이 빠지지 않는다.
송편이 언제부터 전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제민요술(齊民要術)’에 보이는 종(?)과 열(? 이 송편인 것으로 추정된다. 종은 줄풀잎에다 기장을 싸서 삶아낸 것으로 각서(角黍)라고도 하였다. 열은 찹쌀가루를 꿀로 반죽하여 길이 1척, 너비 2촌으로 펴서 빗으로 잘라 이것에 대추와 밥을 아래위로 붙인 다음 기름을 골고루 바르고 대나무잎으로 싸서 쪄낸 것이다, ‘목은집(牧隱集)’에 보이는 팥소를 넣은 차기장 떡도 송편의 일종으로 추측돼 고려시대에 일반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정월 보름날 농가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집집마다 장대에 곡식 이삭을 매달아 대문간에 세워 두었다가 중화절(中和節·2월 1일)에 이것으로 송편을 만들어 노비에게 나이수대로 나누어주는 풍속이 있었다. 그래서 이날을 속칭 노비일이라고 하며, 이 떡을 나이떡이라고 불렀다. 이 풍속은 중화절부터 시작되는 농사일을 잘 해줄 것을 당부하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추석에는 햅쌀로 송편을 빚어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고 하였다. 이 풍습은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와 지금은 송편이 추석의 상징떡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송편 빚는 며느리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시간은 흘러가는데 / 적적하던 내 고향집 오늘은 북적대지만 우리 모두 다 떠나면 얼마나 외로우실까 / 또 우실지 몰라” 안치환이 작사·작곡·노래한 ‘고향집에서’ 3절은 추석을 맞은 고향집 정경을 담았는데 며느리들이 마루에 모여 앉아 송편을 빚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며느리들 뿐이겠는가.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딸을 낳는다”며 온가족이 모여앉아 송편을 빚는 정경은 예나 지금이나 정겹다. 하지만 요즘은 떡집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팔기 때문에 집에서 송편을 빚는 풍속이 점점 사라져 간다./ 임병호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