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대법원 권고

판사·검사·변호사가 짜면 못할 일이 없다. 형벌을 내려야 한다고 재판에 붙인 검사, 재판받는 피고인의 억울한 사정이나 딱한 형편을 변론하는 변호사, 이에 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직분이 각기 다르다. 다른 직분의 법조 삼륜이 한통속이 되면 그 재판은 엉망일 수밖에 없다. 무죄가 유죄가 되고 유죄도 무죄가 날 것이다.

신속한 재판을 위한다는 대법원의 재판 진행절차 협의 권고가 또 말썽이다. 첫 공판 전에 갖는 진행 협의는 ‘사개위’가 제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공개된 법정에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상황에 따라선 비공개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에게 권고한 첫 공판 전 진행 협의는 법 개정안의 공판 전 준비절차 수준을 원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공개 법정에서 갖는 것은 환영하지만 판사실 같은 공개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갖는 덴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검찰측 입장이다. 이에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법원이 소송 지휘권을 활용, 비공개로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검찰이나 변호사가 협조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걸로 전해졌다.

검찰의 입장과 법원의 반응이 어떻든 분명한 건 있다. 방청객이 없는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갖는 판사·검사·변호사의 협의 모임은 공판중심주의에 어긋난다는 사실이다. 법원은 변호사 등의 판사실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잘 하는 일이다. 모든 것은 법정에서 피력되고 논의되고 처리돼야 한다. 판사실 출입 제한은 단순히 브로커의 준동을 막기 위한 것 만은 아니다.

그런데 판사실에서 판사·검사·변호사가 모여 재판 진행 협의를 갖도록 하라는 갑작스런 대법원 권고는 좀 황당하다.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하다 보니 재판이 지연될 수 있어 그러는 진 몰라도 아직 법제화되지 않은 것을 권고하는 것은 실정법 정신에 합치된다 하기가 어렵다. 법원이 재판에 소송지휘권을 갖는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검사나 변호사를 맘대로 ‘오라 … 가라’ 하는 것이 지휘권의 재량에 든다 할 순 없다.

아뭏든 판사·검사·변호사가 법정 이외에서 갖는 모임은 ‘밀실협의’의 인상이 짙다.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더라도 장소를 법정으로 국한해야 된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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