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의 어폐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청와대에 알린 여야 영수회담 제의는 결국 5당 대표 회담으로 끝나고 말았다. 북의 핵 실험 예정 발표로 통보했던 영수회담 제의는 청와대측의 검토형식으로 유보됐다가 핵 실험이 있고나서 노무현 대통령이 5당 대표의 청와대 초청 모임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수회담이란 영수(領袖)에 어폐가 심하다. 국어대사전은 영수란 말을 ‘여러 사람 중의 우두머리’라고 풀이하고 있다. 강 대표가 당(黨)의 우두머리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다분히 권위주의적인 게 또 ‘영수’란 말이다.

영수회담의 용어 역시 권위주의 시대에 쓰였던 정치용어다. 집권당의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겸했던 시절이다. 그것도 그냥 대표가 아니고 ‘총재’라고 했다.

강 대표가 노 대통령과의 회동 요구에 여야 영수회담이라고 한 것은 이런 어감상의 어폐도 있지만 어의(語意)로 보아도 어폐가 있다.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위는 평당원이다. 물론 대통령 지위의 영향력을 당에 직간접으로 발휘하고 있긴하나 법통으로는 집권당의 총재도 아니고 대표도 아니다.

강 대표의 회동 제의는 정부 조직의 지위가 아닌 정당법에 의한 정당, 즉 제1야당 대표 자격으로서 한 것이다. 야당 대표가 여당의 평당원에 제의한 여야 영수회담이란 당치않은 소리다. 5당 대표 중 열린우리당 대표로는 김근태 의장이 참여했다.

강 대표의 영수회담 제의는 이번만이 아니다. 전에도 영수회담이란 걸 제의한 적이 있다. 영수회담이란 말을 선호하는 덴 권위적 위엄이 있기 때문인 진 모르겠지만 시대적 어감으로나 어의적 해석으로나 어폐가 많아 즐길수 있는 말이 못된다.

북이 ‘김일성 수령’으로 속된 수령(首領·국어대사전 ‘한 당파나 무리의 우두머리’)의 용어를 절대·신성·최고의 개념으로 만든 ‘수령론’ 같은 개작이 있으면 몰라도 일반적 ‘영수’ 용어의 영수회담이란 당치않다.

강 대표가 앞으로라도 노 대통령과의 회동을 제의하고자 하면 말 그대로 ‘대통령 면담’ 제의라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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