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부모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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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다 자란 뒤에도 주변을 맴돌면서 간섭을 멈추지 않는 부모를 일컫는 신조어가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s)’다. 최근 미국과 영국의 주요 언론에는 대학에서 수강과목을 골라주고, 교수와의 상담에 끼어드는가 하면, 좋은 룸메이트를 배정해달라고 로비하는 헬리콥터 부모의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들 부모는 심지어 자녀가 입사한 기업과의 연봉협상까지 나서고 있다고 한다.

용어는 새롭지만 그 내용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얘기다. 대학입학과 동시에 끝나던 치맛바람이 이젠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학부제 대학 입학 후 학과를 선택하는 학과설명회는 아예 반 이상이 부모들이다. 취업설명회에서도 자녀 손을 잡고 온 부모의 모습이 태반이다. 대학공부나 취업에선 물론 결혼과 이혼과정에도 부모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

60대 초반 주부 A씨는 헬리콥터 부모의 전형이다. 큰 아들을 자신이 결혼시켰다가 마음에 안들어 이혼시켰다. 헬리콥터 부모들은 자녀가 필요하다면 슈퍼맨이나 베트맨을 자처한다. 한 어학연수 전문기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응답자 가운데 16%만이 ‘어학연수 비용을 본인이 마련하겠다’고 했다. 반면 25%가 1천만원이 넘는 연수경비를 부모가 마련해 줄 것이라고 응답했다. 한국노동연구원 2004년 보고서에 따르면 가정을 꾸려 부모로부터 독립해 사는 30, 40대 10가구 중 1가구 정도가 부모에게 손을 벌리고 있는 ‘캥거루족’으로 나타났다.

헬리콥터 부모가 생기는 이유는 자녀수가 줄고, 부모학력이 고학력이며, 상대적으로 부유해졌기 때문이다. 풍족해진 시간과 돈을 한 두명인 자녀에 집중하다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저마다 가정에서 왕자와 공주로 키워지고 있다, 이런 ‘풍족한’ 관심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헬리콥터 부모의 역할이 대학입시까지는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자녀의 인생을 심각하게 망칠 우려가 크다. 요즘 일본에서도 엄마와 아들이 늘 세트로 다니는 ‘캡슐모자(母子)’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헬기부모, 캡슐모자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특히 젊은 부모들이 걱정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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