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트 클로드 브뤼마숑 무용단과 아 세이 보치의 만남은 다분히 미켈란젤로의 그림 가운데서도 '인간의 창조'를 떠올리게 했다.
서로 닮은 신과 그가 창조한 아담이 서로 손가락을 마주 대며 신성과 인성이 '접촉'을 시도하는 그 그림은 인간 본성 그 자체를 가치있게 여긴 르네상스 시대 불굴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접촉' 그 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클로드 무용단의 '심연의 우수'는 그 이후의 사건을 '혼돈'으로 보여주었다.
제9회 서울세계무용 축제(SIDance)에 소개된 '심연의 우수'(10월13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는 무용계 뿐 아니라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바로크 이전 시대의 합창을 복원하며 원전 연주계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는 아 카펠라 합창단 아세이 보치가 가담한 작품으로, 조스캥을 비롯한 르네상스 시대 종교 음악이 실제로 연주되며 작품의 주제가 미켈란젤로라는 점은 여러 모로 고음악 애호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만한 요소들이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모든 기대는 어긋났다. 단정하고 평화로우며 성스러운 음악을 매개로 한 클로드 브뤼마숑 단원들의 움직임은 폭력적일 만큼 격정적이었으며 충격적이었다.
천상의 음악을 있는 그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둔 채 잘 단련된 무용수들의 벌거벗은 신체는 리듬과 상관없이 서로 뒤엉키고, 두들기고, 부대끼고, 이리저리 내던져지며 헝클어지고 뒤틀린 인간의 모습을 표현했다.
이러한 음악과 육체의 분열은 특히 전반부에서 대단히 뚜렷하게 드러났다. 시작 장면에서 둥글게 모여 코스탄초 페스타의 'Super flumina babylonis'를 노래한 여섯 명의 아 세이 보치 단원은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무대 오른쪽 의자에 앉아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관조할 뿐이었다.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육체와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공기 같은 종교 합창곡은 그대로 이질적으로 '미켈란젤로의 작업실'을 표방하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부자연스럽게 이리저리 뒤엉켰다.
그러나 작품이 전개될수록 성스러운 음악과 세속적인 몸짓은 각각의 성격을 그대로 고수하는 가운데 융화를 시도했다.
다윗과 골리앗, 노아의 대홍수, 낙원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등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에서 비롯된 모든 성서의 내용들이 뒤틀린 형상으로 육체화해 가는 가운데 아 세이 보치 단원들은 때로는 무대 중앙에서, 때로는 무대 한 켠에서, 그리고 마침내는 무용수와 한 명씩 짝을 이루었다.
그들의 육성을 통해 흐르던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청 작곡가 조스캥 데 프레의 'Regina Ceali' 'Christus mrtuus est' 'O Maria'와 모랄레스의 'Sabbato Sancto'는 더 이상 천상에 머물지 않고 우리 인간의 내면이 추구하고 갈망하는 인간적인 신성이 되어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하여 무용수들이 내는 부수적인 소리, 물이 젖은 천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 소리, 박수 소리, 육체가 바닥에 스치는 소리, 도약하는 무용수들의 발 구르는 소리, 살과 살이 마주치는 소리 등 콘서트 홀에서라면 '잡음'이라고 분류될 다양한 인간 본연의 소리와 함께 어울렸다. (실제 이 공연에서 음향은 음악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신성한 음악이 인간적인 몸짓과 소리에 의해 본성 자체가 해체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육체의 광기와 에로티시즘은 차분하고 숙연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마지막 아 세이 보치 단원 중 한 명을 무동에 태우는 등 무용수와 성악가가 한 명씩 짝을 이룬 가운데 노래 소리는 조명과 함께 잦아들고 그대로 멈춘 듯 정지해 버렸다.
무용(속)과 음악(성)이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마침내는 '구분'이라는 의미 자체를 뛰어넘어 하나로 융합하는 모습은 비단 모티브가 된 미켈란젤로의 작품의 주제만은 아니었다.
아 세이 보치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울려퍼진 조스캥 데 프레 또한 그가 살던 르네상스 시대 끝없이 갈구한 이념이 '아르스 콤비나토리아', 즉 '결합의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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