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원부가 내년 7월부터 비(非)법정단위를 계약서나 광고, 상품 등에 사용하는 기업이나 업소에 대해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내년 6월까지 홍보를 한 뒤 7월부터 단속을 벌여 ‘㎡’ ‘m’ ‘g’ 등 법정계량 대신 ‘평’ 근’ ‘자’ 등의 비법정계량단위를 사용하면 처벌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문제점이 적지 않다. 세계 각 나라는 문화와 역사적 배경에 따라 길이, 무게, 면적, 부피 등에 관해 다양한 계량단위를 갖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척관법(尺貫法), 1790년 프랑스 파리과학아카데미가 만든 미터법, 영국과 미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야드·파운드법이 대표적인 예다. 1875년 체결된 국제미터협약은 전 세계가 미터법을 사용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에 현대적 계량체계가 도입된 것은 1902년 궁내부(宮內府)에 도량형 사무를 관장하는 평식원(平式院) 설치가 시발점이다. 1905년 대한제국 법률 1호로 제정된 도량형 규칙은 척관법을 미터법과 야드·파운드법과 혼용토록 했다. 이때 척관법에서 길이의 기본단위인 자 또는 척(尺)을 0.303m, 무게의 단위인 관(貫)은 3.75㎏으로 규정했다. 이후 1961년 제정된 계량법은 거래와 증명에 미터법만 쓰도록 했다. 하지만 아직도 부동산중개업의 88%가 ㎡ 대신 평을, 귀금속판매업의 71%가 3.75g 대신 1돈쭝을 사용한다. 비법정단위를 사용하면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건 1961년 계량법에서 국제단위계(미터법·SI)를 법정계량단위로 채택한 지 45년이 지났지만 실생활에서 여전히 여러 단위가 함께 쓰여 혼란이 크기 때문이란다.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을 써야 한다는 정부의 말은 틀리지 않는다. 실제로 비법정계량단위는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마지기’의 경우 경기지역에선 1마지기가 495㎡이지만 충청지역에선 660㎡, 강원지역은 990㎡다. 식품을 파고 살 때 쓰는 ‘근’만 해도 1근이 쇠고기는 600g이지만 채소는 400g이다. 그렇다 해도 산자부의 자세는 마뜩지 않다. 젊은 세대들이 척관법을 잘 모르는 것처럼 시간이 가면 법정계량단위는 자연스럽게 정착된다. 중고령 세대의 감각을 존중, 전통 단위를 병기토록 해야지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건 행정만능주의다. ‘삼척동자’를 ‘91㎝ 동자’로 쓸 수는 없잖은가./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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