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 보도에서 공공성보다 선정성이 짙다”는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지적을 우리 언론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민우회가 서울에서 발행되는 6개 일간지의 올해 1월부터 7월까지의 성폭력 관련 기사 전체를 모니터한 결과를 보면 수긍을 안할 수 없다.
“발바리 세포가 빠르게 분열하고 있다” “‘발바리’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서울 발바리’도 잡아라” 등 ‘발바리’란 말을 사회면 가십난에서 자주 썼는데 가해자의 속칭인 ‘빨간 모자’ ‘산다람쥐’ ‘ 발바리’ ‘원조 발바리’ 등은 경찰이 검거 실적을 발표하면서 언론 보도에 ‘먹힐’것을 겨냥해 부풀려 놓은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흥미 본위의 속칭을 남발하는 이런 보도는 범죄의 심각성을 희석하고 희화화하는 문제를 낳는다.
피해자에게 명백한 폭력인 사건을 남녀 사이의 연애 관계, 짝사랑이 빚은 결과 등으로 묘사한 것도 그렇다. 예컨대 “성인이 되면 (피해자와)결혼하려 했다”는 가해자의 진술을 액면 그대로 옮겨 써 폭력과 성애를 구분하지 않는다. “옷 위로 살살 자극을 주다가…” “처녀막이 파열됐다” “최 의원에게 가슴을 잡힌 여기자”등은 불필요하고 선정적인 묘사다. 소설에서나 나올 문장이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부모가 이혼해 결손가정에서 생활해 온 12세 소녀가 가출했다가 끝내 성폭력 피해자로 전락했다”는 보도는 성폭력 피해가 가정 환경때문에 벌어진 것처럼 왜곡한 기사다. 성폭력으로 피해를 본 것을 ‘상태가 나쁘거나 타락했다’는 사전적 의미인 ‘전락’이라고 표현한 것은 잘못이다.
성폭력은 극악한 자들이나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다. 피해자가 조심한다고 해서 뿌리 뽑힐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피해자의 82%가 ‘아는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조사에서 나타나듯 성폭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비교적 흔한 범죄인데 “딸 키우는 죄 어찌하면 좋습니까” “부모가 자녀들에게 수상하거나 낯선 사람들은 경계해야 한다고 교육을 해야 한다”는 등 보도는 성폭력을 ‘딸들과 딸 가진 부모가 조심해야 하는 범죄’라는 잘못된 통념을 심어 줄 수 있다. 민우회가 이달 말 발표한다는 ‘성폭력 보도 기준’을 언론인들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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