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네살된 노인이 일흔다섯살인 부인이 지병으로 숨지자 자신도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부인은 3년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고혈압에 당뇨병 합병 증세까지 겹쳤다고 한다. 노인은 식사 등 집안 살림을 살면서 거동을 못하는 부인을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다니는 등 병 수발을 들어왔다는 것이다. “너희 어머니가 주무시다가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너희들이 준 용돈을 쓰지않고 장롱밑에 모아놨다” 서울 사는 아들에게 노인이 전화로 남긴 마지막 말이다.
이상은 남양주 현지발로 어제 보도된 ‘안타까운 思婦曲’ 제하 기사의 요약된 내용이다. 그 노인은 물론 사별의 외로움이야 더 말할 수 없이 컸겠지만, 이제 자신의 인생에서 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대개의 노부부는 나이를 더 할수록 금실이 좋다. 인생황혼기의 고독도 고독이지만 젊었을 적에 서로가 고생시켰다는 미안한 죄책감에서 새로운 깊은 애정이 싹튼다. 안노인 보다는 바깥노인들이 이런 마음을 더 많이 갖는다.
유한한 수명에서 부부의 사별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시작된 어쩔 수 없는 숙명이지만 정작 닥치고 나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수가 없다. 아무리 오랫동안 병석에 누웠던 아내였을지라도 막상 이승을 떠나고나면, 몸져 자리 보전만하고 있어도 더 살았으면 좋았을 걸… 더 잘해주지 못했던 회한이 가슴을 치미는 것이 인간의 상정이다.
늙어 병들면 부부뿐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노인환자를 간병하는 사람은 거의가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다. 자녀나 며느리들은 먹고 살기에 바쁘단 이유로 손님처럼 가끔 얼굴을 내미는 것이 고작이지만 부모들은 그래도 크겐 섭섭하게 여기지 않는다.
웬만한 처지면 자식이 벌어서 준 용돈을 차마 쓰지못하고 되도록이면 모아두는 것이 또한 부모의 마음이다. 남양주의 그 노인 분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노인도 젊어선 부모의 마음을 몰랐으니, 지금의 젊은 사람들이 그런 부모 마음을 모른들 탓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여든넷이면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조만간 부인의 뒤를 따라 갈 것을 그토록 서둘러 간 것이 안타깝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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