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작전통제권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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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된 외국과의 동맹사례로는 신라와 당나라, 조선과 명나라가 대표적인 경우다. 군사지휘권을 넘기지는 않았지만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했다. 당 태종은 동맹을 맺기 위해 찾아온 김춘추(604~661)에게 “두 나라(고구려·백제)를 평정하면 평양의 남쪽과 백제땅은 모두 신라에게 주어 길이 편안하게 살리라”고 맹약했다. 결국 나·당연합군은 양국의 실리를 챙겼다. 당나라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고구려를 정벌했고, 신라는 대동강과 원산만 남쪽의 고구려땅과 백제땅을 영토로 확보했다. 하지만 신라는 고구려땅을 잃은 채 반쪽 통일에 그쳤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공세에 견디다 못한 조선은 명나라에 지원요청을 했고, 명나라는 못이기는 척하며 조선에 군대를 보냈다. 우리 역사상 외국 지원군대가 국내에 들어 온 것은 명나라 군대가 처음이다. 명나라 군대가 조선땅에 들어온 뒤 조선 군사들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났다. 군사지휘권을 거머쥔 명군이 조선군을 지휘했고, 명군의 허락을 받은 후에야 조선군의 출동이 가능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명군 제독 진린의 방해와 제재를 받았다. 육지에선 명군 장수 이여송이 같은 역할을 했다. 6·25 한국전쟁 당시 급박한 위기에 몰려 우리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내준 것과 같은 사례다.

명나라와 일본이 조선을 배제하고 강화교섭을 벌인 것도 한국전쟁 당시와 흡사하다. 당사국인 조선은 옵서버에 불과했고, 명나라와 일본 양국은 제멋대로 협상을 벌였다. 그때 선조는 협상반대와 항전을 외치면서 영토회복을 도모했다. 비록 묵살되긴 했지만 다른 나라끼리 조선 땅을 분할 통치하려는 논의가 벌어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최초로 외국군이 들어와 군사지휘권을 갖고 전쟁을 수행하는 한편 당사국인 조선을 제외하고 전쟁중단의 외교교섭을 벌인 사례다.

한·미동맹을 맺은 한국과 미국이 지난 10월21일 제38차 안보협의회(SCM)를 통해 전시 작전통제권의 한국군 단독행사에 합의함에 따라 작통권 전환에 본격적인 드라이브가 걸렸다. 작통권 환수 시기를 놓고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나라가 가져야 할 군사지휘권이다. 자주국방이 더욱 절실해졌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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