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협상 과정에서 서독 정부의 특사를 맡아 깊숙이 개입했던 호르스트 텔시크 박사가 “북핵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데도 한국 사람들이 너무 평온한 것에 놀랐다”면서 “2002년 월드컵 때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인파처럼 북한 핵실험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한국 사람들은 너무 무덤덤하다.”고 말했다. 1977~1990년에 독일연방의회 기민당 원내대표를 지낸 후 정계를 은퇴, 독일 컨설팅회사인 텔시크어소시에이츠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한독(韓獨)산학협동단지(KGIT)연구센터 개소식 참석차 방한했는데 “한국 사람들은 자꾸 반복되는 안보불안 상황때문에 안보불감증에 걸린 데다 현재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카드가 없기 때문에 체념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칼 요한 하그만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 신임 회장도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축소하려고 해선 안 된다. 한국 밖에서는 북한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있는 반면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7월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유럽과 미국 회사 간부회의의 화제는 온통 북한 미사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침묵을 지킨 것은 한국 정부가 북한 문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였다.”고 덧붙였다.
국제정세에 밝은 두 외국인이 한국을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외국인 투자유치 보고회에서 “북핵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일방적으로 도발할 수 있을 만큼 현재로는 군사적 균형이 깨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 군과 국민, 한미동맹, 국제사회의 역량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지극히 낙관적인 견해다. 노 대통령의 생각대로만 된다면 안보를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북핵의 위협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윤광웅 국방장관도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환수)로 생길 수 있는 군사력 공백 문제에 대해 “면허증이 있으면 포니를 운전하는 기사가 에쿠스도 (운전)할 수 있다.”고 국정감사에서 답했다.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믿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지금 이 정권은 만성적인 안보불감증에 빠져 있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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