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들

중국이나 러시아 또 태국 등 동남아를 유랑하는 탈북자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이들 가운데 국내에 입국한 새터민들은 제3국의 기아속에서 체포 등 사선을 넘어선 사람들이다.

탈북 새터민이 지난 9월말 현재로 9천410명에 이른다. 당국은 연말까지 1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토록 많은 새터민들이 그리고 지금도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이 가령 한꺼번에 휴전선을 넘어왔고 또 넘어온다면 어찌 될까를 생각해 본다.

독일의 통일은 서독 행렬의 동독 난민들이 베를린 장벽을 두드려 부순데서 시작됐다. 그러나 한반도엔 휴전선이 있다. 휴전선을 가로지른 철조망은 장벽보다 부수기는 쉽다. 쉽지만 지뢰밭 투성이다. 남쪽은 국군, 북쪽은 인민군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다.

북녘 주민이 한 두 사람만 넘어와도 큰 뉴스가 됐던 시대가 지금은 아니다. 거의 날마다 입국하다 시피하는 게 새터민들이다. 그중엔 성공한 사람이 많다. 반면에 좌절한 새터민들도 적잖다. 새터민의 좌절은 자유사회에 적응을 못한데서 기인한다. 북녘생활은 ‘수령님 만세!’ ‘장군님 만세!’를 부르며 통제사회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된다.

그러나 남쪽생활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가 책임을 진다. 책임을 창조해야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것이 자유인 것이다. 하지만 북녘의 기계생활에 젖은 새터민 중엔 남녘의 창조생활을 감당키 어려운 사람이 상당하다. 이런데도 탈북자는 늘고 입국하는 새터민들은 좀처럼 줄어들 줄 모른다.

이해하기 어려운 게 북녘 정권이다. 인민들 생활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탈북 사태를 빚어 제3국이며 남쪽으로 내몰면서도 전혀 수치를 모른다. 언젠가는 동독 난민들이 베를린 장벽을 허문 것처럼 죽음을 무릅쓴 휴전선 돌파의 무더기 난민행렬이 있게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 장차 통일이 되어도 통제사회의 이질감을 어떻게 자유사회와 접목시키느냐가 문제다.

당장은 날로 느는 새터민들이다. 고향산천을 떠난 사람들이다. 부모형제를 두고 온 사람들도 있다.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목숨걸고 물정에 어두운 곳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마음으로나마 따뜻하게 대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 임양은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