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때가 되면 잎속의 영양분이 줄기 등으로 이동한다. 이로 인해 엽록소가 소실되어 떨어지는 것이 낙엽이다. 엽록소가 소실되고 남은 색소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단풍나무 같은 홍엽이 있고 은행나무 같은 황엽이 있다.
낙엽은 주변 환경의 자극에 민감하다. 예컨대 가로수 은행나무에 가로등이 비치는 잎은 가로등 불빛이 그늘진 잎보다 더 오래 간다. 떡갈나무 같은 건 자연기온에선 낙엽이 지지만 온실기온에선 낙엽이 지지 않는다.
어느새 하늬바람의 냉기가 점차 거세다. 견디다 못해 떨어진 가로수 낙엽이 보도를 뒹군다. 낙엽은 바람따라 뒹굴면서도 하루하루 갈수록 더 쌓인다. 낙엽은 도심속 계절의 전령이다. 수북이 쌓여가는 낙엽을 보면서 겨울이 온 것을, 그리고 또 한 해가 다 가는 것을 피부로 실감한다.
‘낙엽을 긁어 모아도 / 북풍이 싸늘한 망각의 어둠속으로 몰아가버리네 / 추억과 회한도 저 낙엽과 같은 것’ 덧없는 인생을 낙엽에 비유한 ‘낙엽’이라는 샹송의 노랫말이다. 프랑스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노랫말에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 조셉 코스마가 곡을 붙였다. 영화배우 이브 몽탕이 노랠 불렀다. 1950년대에 서구사회를 휩쓴 유명한 노래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면서 시조문학의 대가인 윤선도의 시조 가운덴 이런게 있다.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 쓸어 무삼하리오’라고 했다. 늦봄엔 낙화, 늦가을엔 낙엽이 계절의 상징이다. 떨어지는 꽃이나 떨어지는 잎은 다 자연의 일부다. 자연은 쓰레기가 아니다. 사람들 손에서 나오는 것이 쓰레기다.
길에서 더러 낙엽 쓸어내는 것을 보면 좀 답답한 생각이 든다. 차도에 너무 떨어진 낙엽은 차가 미끌릴 우려가 있어서 쓴다지만 보도에 떨어진 낙엽은 그대로 두는 것이 자연의 운치다.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고 한 것처럼 ‘낙엽인들 잎이 아니랴!’ 하는 맘을 갖는다. 어차피 삶의 뒤안길은 ‘추억과 회한도 저 낙엽과 같은 것’을, 단풍나무의 진노랑 낙엽을 주어 책갈피 속에 고이 넣어둔 소녀가 생각난다. 잎 지고 다시 피는 낙엽따라 인생은 가고 인생은 온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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