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D H 로렌스가 ‘채털리부인의 사랑’을 완성한 것은 1928년 1월이다. 소설은 성불구자 남편이 있는 주인공 코니가 사냥터지기 멜로즈와 성행위를 동반한 사랑을 나누고 결국 남편과의 이혼을 강행하는 내용이다.
당시 영국의 출판사들은 대담한 성행위 묘사와 비속어를 삭제하면 책을 내겠다고 제안했지만 로렌스는 거절하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자비로 출판했다. 영어권 조판공들이 “도덕적으로 더럽다”며 인쇄 작업을 거부해 영어를 모르는 이탈리아 조판공에게 작업을 맡긴 것이다. 이탈리아 조판공은 소설이 섹스에 관한 이야기라는 설명을 듣고 “그런 건 매일 하는 게 아닌가”라면서 작업에 착수했다.
‘채털리부인의 사랑’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영국과 미국에서 판금조치를 당했지만 불법해적판이 쏟아져 나와 비싼 값으로 팔렸다. 단속을 나온 경찰에게 이 책을 선물로 주고 무마했다는 서점 주인도 있었다. 로렌스가 타계한 후 2년 뒤인 1932년 영국과 미국에서 일부 삭제판이 나왔지만 성애 묘사가 들어 있는 해적판은 계속 팔렸다.
‘채털리부인의 사랑’의 소송 사건은 특히 유명하다. 영국의 펭귄출판사가 소설 속 성애 장면을 삭제하지 않고 내기로 결정하자 외설물 검열관이 출판사를 고소했다. 시인, 비평가, 영문학자, 성직자 등 35명에 이르는 증인이 외설 시비를 가리기 위해 법정에 섰다.
증인들은 이 소설을 집으로 갖고 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재판관이 정한 장소에서 각자 떨어져서 읽어야 했다.
검사는 30여 쪽에 이르는 성애 묘사가 꼭 필요한 장면인지 물었고, 증언들은 모두 “지나친 감은 있지만 그렇다”고 답했다.
음란 호색물로만 알려졌던 이 소설이 실은 정신주의적 삶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산업사회의 허위의식을 꼬집었다는 것으로 주제 의식이 부각됐다.
남녀 간의 육체적인 묘사가 자연주의 생명주의의 구현을 상징한다는 등 텍스트의 예술성을 탐색하는 다양한 성과도 나왔다. ‘채털리부인의 사랑’의 재판은 1960년 11월 2일 펭귄출판사가 승소했는데 ‘외설과 예술 사이’를 판정하는 데 32년이 걸렸다.
이 소설의 원제는 ‘채털리부인의 연인(Lady Chatterley’s Lover)’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