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페라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투란도트 공주로 몸무게 150㎏의 거구가 출연한다고 상상해보세요. 현대의 오페라에서는 가창력 뿐 아니라 외모와 연기력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76) 씨가 지난 19일 한국오페라단 박기현 단장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그가 한국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 그의 한국과 인연은 지휘자 정명훈 씨와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등 세 차례 작업한 것이 전부다. 그는 내년 5월 서울에서 한국적 색채를 넣은 '피치표' 오페라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22일 오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시차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면서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건강 비결을 묻자 "열심히 일에 매달리고, 음식은 적게 먹는 것, 그리고 많이 걷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21일에는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을 둘러보고, 한정식집에서 물김치 등 갖가지 한국음식도 맛봤다. 26일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그는 재래시장에 들러 한국의 옷감을 구경하고, 한강과 사찰 등도 둘러볼 계획이다. 한국에서 체험한 것들을 오페라 연출에 반영한다는 것.

"한국에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 같은 훌륭한 공연장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예술의전당이 무대에 집중할 수 있게 설계됐다는 점에서 좀 더 나은 것 같았습니다. 한국음식은 자연의 맛을 살렸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음식과 통한다고 할까요."

한국에서 어떤 작품을 올릴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21일 뮤지컬 '점프' 공연을 보면서 힌트를 얻은 듯 했다.

"공연을 보면서 한국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뜨겁다는 것을 느꼈어요. 한국 무대에 올리는 오페라도 그 점을 고려해서 정할 겁니다. 헨델의 '리날도' 같은 바로크 오페라가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일반인의 선입견과 달리 헨델의 바로크 오페라들이 속도감 있고 음악도 화려하거든요."

그가 지난 50여 년간 연출한 오페라만 500편이 넘고, 연극까지 합하면 700편 이상이다. '대가' 또는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인물.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의 예술감독도 맡았고, 오페라 관련 전시회도 숱하게 열었다.

오페라에 잔뼈가 굵은 만큼 주관도 뚜렷하다. 첫째는 "베르디의 '아이다'가 돼야지 연출가의 '아이다'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목소리 뿐 아니라 연기력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출가는 무대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습니다. 단 오페라 초연 때의 정신을 무시하면 안되죠. 또 연출이 색다르고 독창적이더라도 관객한테는 쉽게 다가가야 합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무대 디자이너와 의상 디자이너 등을 두루 거쳤으며, 오페라 연출의 거장 루카 론코니와 공동작업을 하다 1977년 연출가로 독립했다.

무대 디자인에서 건축적 요소가 많이 발견되는 점과 다른 오페라와 달리 무대, 미술, 의상 등을 혼자 전담하기 때문에 통일적 연출 컨셉트가 유지되는 점이 그의 작품이 가진 강점이다.

"무대는 수학적 정확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이 잘 결합해야 합니다. 아무리 발상이 좋아도 건축이 수학적으로 치밀하지 않으면 건물이 무너지고 마는 것과 마찬가지죠. 또 저는 극장이 신전 만큼이나 성스럽고 절대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탈리아 페사로에서 해마다 열리는 로시니 오페라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25년간이나 맡았으며, 2005년 10월에는 2년 임기의 마체레타 오페라 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 부임했다. 오페라 연출에서 업적을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훈장도 받았다.

"언제까지 오페라 연출을 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때까지"라고 답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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