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의 비서실인 승정원은 거세하지 않은 내시와 마찬가지였다. 궁중 내시의 정치 참여가 금기였던 것처럼 승정원 역시 지금의 내각과 같은 조정의 정사에는 초연했다.
임금을 지근에서 섬기는 승정원의 도승지 부승지 좌·우부승지 등이 조정 일에 간여하기 시작하면 임금을 등에 업은 ‘호가호위’(狐假虎威)의 파당이 지어지기 때문이다. 승정원은 말없는 임금의 그림자 노릇만 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비록 형태는 달라도 대통령 비서실이 갖는 직분의 본질은 다를 바가 없다. 수석비서관들은 대통령 지근에서 묵묵히 보필하는 것이 소임이다. 국정의 중심은 내각이지 비서실은 아니다.
이런데도 마치 내각을 지휘하는 행세를 곧잘 해대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이다. 국무위원인 각 부처 장관은 관청의 지위에 있지만, 대통령 비서실은 그 누구도 보조기관일 뿐 의사결정권을 갖는 관청의 지위는 아니다. 청와대에서 관청의 지위는 대통령 뿐이다.
무슨 비서관이 어느 부처 정책을 앞서 발표하거나 정책을 다르게 발표하는 것은 대통령을 등에 업은 ‘호가호위’의 월권이다. 이러다 보니 대통령 비서실과 내각 간에 인맥이라는 것이 형성되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은 참 희한한 비서실이다. 역대 대통령 중에 규모도 가장 크고 말썽도 가장 많다. 국정의 난맥상은 그렇다 해도 추문이 끊이질 않는다. 강남에 사둔 아파트 두 채로 거액을 편법 대출 받았는가 하면 논문 표절 소동을 빚은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는 아내를 살해한 강력범도 있었다. 요즘은 다단계 업체와 10억원을 부당 거래한 사람이 있어 구설수에 올랐다. 가족이 한 일이라지만 몰랐다 할 수가 없다.
왕조의 승정원은 도덕성을 목숨처럼 중요시했다. 임금의 지근에 있기 때문에 처신 하나 하나에 그만큼 조심했던 것이다. 민주주의에선 더 하면 더 했지 못한다 할 수 없다. 대통령 비서실은 최고의 권부다. 도덕성의 상징인 것이다. 민주주의의 승정원이 왕조의 승정원보단 못하다면 어떻게 될까, 청와대 비서실의 도덕성에 국민사회가 몇 점이나 줄지 흥미롭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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