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시위문화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 25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노총의 ‘전국 노동자 대회’에는 2만5천여명이 집결했지만 아무런 불상사 없이 평화적으로 끝났다. 노동계 집회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죽봉과 쇠파이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위대를 차단하기 위해 집회 장소와 도로 사이를 수십 대의 전경버스가 가로 막는 일도 없었다. 중무장한 전경은 보이지 않았고 교통경찰 100여명이 나와 주변의 차량 소통을 도왔다. 서울시청 앞을 오가는 차량들은 평상시처럼 제 속도를 내면서 통행하였다.
불과 이틀 전인 22일 같은 장소에서 민주노총, 전국농민총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미FTA범국민운동본부 등이 열었던 집회는 참석자가 1만3천여명이었다. 한노총 집회의 절반 수준이었다. 경찰 7천700여명이 배치됐었다. 사전 평화시위 약속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폭력사태로 번졌다. 서울시청 앞 일대가 시위대 때문에 거의 마비됐다. 같은 날 지방에서 열린 집회는 참석자들이 관공서를 습격하는 등 폭력으로 얼룩졌다. 국민은 참으로 대조적인 두 집회 광경을 보았다.
한노총의 전국 노동자 대회가 평화적으로 끝난 것은 무엇보다 지도부의 강력한 의지 덕분이었다. 이용득 한노총 위원장은 집회 이전부터 “시민에게 고통을 주는 폭력 시위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평화시위가 어떤 건지 이번에 보여주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다. 한노총이 자율적으로 편성한 ‘질서유지대’가 집회 장소와 도로 사이에 인간띠를 형성했다. 평소 경찰이 하던 일을 집회 측이 대신 한 것이다. 술 취한 집회 참석자도 없었다. 집회 참석자들은 대회가 끝날 때 쯤 대형 쓰레기 봉투 600여개로 자신들이 버린 쓰레기를 말끔히 주웠다. 전경을 아들로 둔 부모들이 크게 기뻐하며 한노총에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한국 사회의 시위문화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이어져왔다. 시위의 쟁점은 민주화와 인권, 자유와 권리 등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보편적인 가치와 관련된 것이었다. 오늘날 시위대의 폭력적 행동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불법·폭력시위는 국민이 용인하지 않는다. 한국노총의 평화시위는 그래서 더욱 신선하였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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