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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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미술사에서 초상화는 사람의 형상만을 묘사한 그림이 아니다. 주인공의 구체적인 생김새나 당시의 사회적 지위 등 외형적인 모습을 그렸지만 더 중시한 것은 인물 내면의 정신세계다. 고집스러운 입술, 형형한 눈, 한올 한올 섬세하게 그려낸 수염 등으로 유명한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의 초상화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는다. 인물은 물론 성격이나 교양 등 그 사람의 정신까지도 그렸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이 조선후기 우국지사 황현,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 ‘강화도령’ 철종, 세자 시절의 영조, 조선 후기 대표 서예가 이광사 등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화 19점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초상화 유물들은 감상용으로 주로 그려진 서양과 달리 주인공이 살았던 당시의 시대상, 미적 감각까지 녹아 있다. 뛰어난 묘사는 회화사적으로 의미가 크고, 실제 생존한 인물을 담았다는 면에서 역사적 자료로도 귀중하다. 또 당시의 복식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목식사 연구에도 필수적이다. 초상화 중 상당수는 소수의 전문연구자들에게만 알려졌을 뿐 그동안 일반에게는 거의 공개되지 않은 작품들이다.

20세기 전반의 대표적 초상화가인 채용신의 ‘황현 초상’(1911년)은 우리 초상화의 전통을 잇는 마지막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또 18세기 말 19세기 초 그려진 ‘조씨 삼형제 초상’은 여러 사람들을 한 화면에 담은 유일한 초상화다. ‘서직수 초상’(1796년)은 합작품이다. 얼굴은 18세기 최고의 초상화가인 이명기가, 몸은 단원 김홍도가 그렸다. 서양식 음영법이 들어간 의복·돗자리, 섬세한 선은 김홍도의 또 다른 화법을 보여준다.

세자 시절 영조를 그린 ‘연잉군 초상’, ‘철종 어진’은 한국전쟁 당시 화면이 일부 소실됐으나 작품의 수준이나 어진이 극소수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채제공 초상’은 기존 작품 외에 3점이 더 확인·추가됐다.

안타까운 것은 수원 ‘화성’을 축성한 정조대왕의 어진이 여전히 발견되지 않는 점이다. 수원 화령전에 봉안됐던 정조의 어진은 1920년대 초 조선총독부가 서울 창덕궁으로 옮겨 간 것까지만 확인되는데 그후 행방이 묘연하다. 정조의 어진이 발견됐으면 좋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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