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은 1395년 창건한 경복궁의 정문이다.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임진왜란 때 불탄 광화문을 다시 지었다.
광화문의 수난은 임진왜란으로 끝나지 않았다. 1927년 일제 조선총독부는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경복궁 여러 곳을 헐어 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광화문을 지금의 자리인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
광화문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했다. 6·25전쟁 땐 폭격으로 편전인 만춘전과 함께 불탔다. 1968년 석축을 수리하여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중건한 것이 지금의 광화문이다. 조선왕조 궁궐의 정문으로 종묘와 사직의 상징적 권위인 광화문 수난사는 곧 역사의 수난사다.
문화재청이 광화문 복원사업에 나섰다. ‘광화문 제모습 찾기’ 선포식을 가진 지난 4일은 1394년 태조가 경복궁 창건을 시작한 날이다. 오는 2009년말 완공 예정인 복원공사는 우선 지금의 철근콘크리트가 아닌 원래의 목조 양식으로 중건된다. 또 일제가 옮겼던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광화문 원형은 가장 높은 가운데칸 높이가 17척 5촌에 너비가 18척이고, 양옆은 높이 16척에 너비가 14척5촌이다. 문루는 앞면이 3칸, 옆면이 2칸으로 우진각 지붕을 얹은 중층 건물이다.
1층 기둥 높이는 7척이고 기둥의 간격은 앞면 가운데가 27척, 양옆이 25척씩에 옆면은 10척씩이다. 그런데 1층 기둥 사이는 개방하고 2층은 판문을 달아 여닫게 했다. 이같은 규모의 광화문 복원공사에 들어갈 목재의 총량이 400t에 이른다. 4t 트럭으로 100대 분량이다.
위치 또한 일제가 경복궁과 어긋지게 옮긴 광화문 축을 역대 임금이 다닌 홍례문 사이 제자리로 다시 옮긴다. 그러니까 원래 위치보다 북쪽으로 약간 물러나 있고, 좌향 역시 원래의 축선과 일치하지 않게 놓인 것을 원형대로 바로잡는 것이다.
광화문 복원공사는 일제 잔재 청산이다. 광화문의 역사적 정통성 확립이다. 지금의 광화문은 이미 용마루 철거작업이 시작됐다.
새 웅자를 드러낼 진면모의 광화문을 상상하면서 더는 광화문의 수난이 없는 국태민안을 기원한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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