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창간된 종합월간문예지 ‘조선문단(朝鮮文壇)’은 한국 신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4호까지는 이광수(李光洙)가, 5~18호까지는 방인근(方仁根)이 주재했다. 1927년 이후 휴간·속간을 거듭하면서 1936년 6월 통권 26호로 종간됐다. ‘조선문단’은 자연주의 문학을 성장시켰으며, 당시 한국문단을 휩쓸던 계급주의적 경향문학(傾向文學)을 배격하였다. ‘조선문단’에 작품을 많이 발표한 사람은 이광수·방인근·염상섭·김억·주요한·김동인·전영택·현진건·박종화·나도향·이상화·김소월·김동환·양주동·노자영·진우촌·양백화·조운·이일·김여수 등으로 모두 한국문학의 거성들이다.
‘조선문단’은 춘해 (春海) 방인근(1899~1975)의 사재로 시작됐다. 춘해는 충남 예산 출생으로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일,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등부를 거쳐 주오대학(中央大學)에서 독문과를 수학했다. 1924년 ‘조선문단’을 창간했는데 이는 당시 문단을 풍미했던 계급주의적 프롤레타리아문학운동에 대항, 민족주의문학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춘해는 초기엔 詩를 썼으나 소설로 전향했다. ‘분투’(1923), ‘어머니’, ‘죽지 못하는 사람들’ ‘순간의 낙원’ ‘금비녀’ ‘행진곡’ ‘눈물 지팡이’ ‘모빠이모껄’ ‘새길’ ‘은행나무’(1941)등 수 많은 단편과 ‘슬픈 해결’(1939) 등의 중편, ‘마도의 향불’(1934) ‘춘몽’ ‘쌍홍무’ ‘방랑의 가인’ ‘젊은 아내’ ‘동방의 새봄’ ‘여인풍경’ ‘명일’ ‘인생극장’ ‘청춘야화’ ‘동방춘’(1956) 등의 장편, ‘금십자가’(1932) 등 희곡, ‘농민문학과 종교문학’(1927) 등 평론을 썼다. 광복 후 한때 탐정(추리)소설도 썼다.
춘해는 소설의 심미적 가치나 사회성보다는 낭만주의적 대중소설을 주로 발표했는데, 그런 연유로 춘해를 통속작가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더구나 무명작가들이 춘해의 이름을 도용해 저질 해적판을 발간, 더욱 곤경에 빠뜨렸다. 충청도 토호의 아들로 논밭을 팔아 ‘조선문단’을 창간하고, ‘조선문단’에 발표되는 시 한 편에 쌀 한가마니값을 지불한 얘기는 유명한 문단비사(文壇秘史)다. 타계하던 해 여름날 송추계곡에서 술을 마시며 주정처럼 한 “지금 계룡산에 백설이 내린다”는 말이 떠오른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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