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강병규 인 걸로 안다. 대구 출신이다. 예명 신성일(申星一)은 고인이 된 신상옥 감독이 지어주었다. 1960년 ‘로맨스 빠빠’로 은막에 데뷔했다. 부인 엄앵란씨와 함께 처녀 총각 시절에 국내 청춘영화의 명콤비를 이루었다. 무려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68년 제10회, 1990년 제28회 대종상 남우주연상에 이어 2004년 제41회 대종상 영화발전상 등 대종상을 세 번 수상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장을 지냈다.
강신성일이란 이름은 1981년 서울 마포에서 본명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낙선한 뒤에 성씨에 예명을 합성한 이름이다. 제16대 국회 총선 때 대구에서 강신성일로 나와 당선됐다. 그러나 이것이 비운의 단초가 됐다.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옥외광고물 업자로부터 편의제공 조건으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징역 5년 선고가 확정됐다. 지금 의정부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전 국회의원이기 보다는 영화배우 강신성일씨에 대한 가석방 탄원서가 국회의원들로부터 나왔다. 국민중심당 원내대표 정진석 의원이 돌린 탄원서에 여야 의원 187명이 서명했다. 김한길 열린우리당, 김형오 한나라당, 김효석 민주당,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등도 서명에 참여했다. 탄원서는 며칠전 김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제출됐다. ‘한국영화 발전에 기여한 점과 올해 일흔살인 노령을 참작해 관용을 호소한다’는 것이 가석방 탄원서 내용이다.
탄원서와 관련, 시선을 끈 인터넷의 한 댓글은 이렇게 밝혔다. ‘신성일이 이회창 후보의 경호원처럼 설치고 다닐 때는 아닌게 아니라 꼴불견이었다. 그러나 나이 70에 아직도 갇혀있는 그를 생각하면 안 됐다는 생각이(중략) 정치판에서 큰 돈을 주무른 자들은 복권되고 장관 자리에 오른 경우가 여러 건 아니던가’라고 했다.
국회의원들이 가석방 탄원에 나선 것은 강신성일씨가 전직 의원인 연유가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인 강신성일씨에 대한 선처 탄원은 객관적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이미 수년동안 옥고를 치르고 있다. 법무부의 신병처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 주목된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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