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아내 이남덕은 원래 이름이 야마모토 마사코였던 일본인이었다. 화가 지망생이었던 그녀는 이중섭을 만나 역(逆)으로 창씨개명을 했다. 일본인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찬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게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공교롭게도 6·25 전쟁까지 터져 피란수용소를 전전해야 했다. 결국 이남덕은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이후 이중섭의 삶은 피폐해졌다. 결국 두 사람은 다시 결합하지 못했다. 이남덕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으로 건너온 그녀의 7년 세월은 기구한 세월이었다.
북녘에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혼자 월남했던 박수근은 부두 노동자 시절 아내와 비슷하게 생긴 여인을 보고 5리길을 정신없이 따라간 적이 있었다. 박수근의 그림에 유난히 여인이나 가족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훗날 가족을 상봉했지만 가족은 언제나 박수근 그림의 중심이었다.
김기창과 박래현은 한국 최초로 부부전(夫婦展)을 개최했던 화가였다. 두 사람은 박래현이 타계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전시회를 부부전 형식으로 열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도쿄유학까지 마친 박래현은 남부러울 것 없는 도도한 여성이었고, 김기창은 어릴적 청력을 상실한 정규 미술교육도 받지 못한 가난한 화가였다. 두 사람은 필담을 나누며 사랑을 키웠고 화가의 길을 동행하였다. 한국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이 부부가 대단한 건 서로 지대한 영향을 주고 받았으면서도 독립된 미술세계를 가진 점이다.
김환기의 아내인 수필가 김향안은 시인 이상(李箱)의 부인이었다. 이상과 사별한 후 김환기를 만난 김향안은 평생 김환기의 반려자이자 매니저로 살았다. 미술경영인이라고 불릴 만큼 남편의 미술세계를 세상과 접목시키는 데 큰 능력을 발휘했다.
빨치산 화가라는 이유로 푸대접을 받다 최근 주목을 받기 시작한 양수아의 유명한 그림 ‘재봉틀질하는 여인’의 모델은 바로 아내 곽옥남이다. 그림 속에서처럼 그녀의 생계수단은 재봉틀질이었다. 양수아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다. 1972년 양수아가 세상을 떠난 후 곽옥남은 화가로 한 번도 인정을 받아보지 못한채 삶을 마감한 남편이 안타까워 많이 울었다. 예술혼을 지킨 화가들과 그 화가를 지킨 아내들의 이야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감동을 준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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