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견지명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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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때 장무공 황형(壯武公 黃衡)은 삼포왜란 같은 왜구의 침입을 막아낸 무신이다. 장무공이 나이가 들어 벼슬을 물리치고 강화도로 낙향했을 때의 일이다. 마을 사람들이 가만히 살펴보니, 나이가 지긋한 서울 양반이 날마다 콩을 볶아 아이들한테 군것질감으로 나눠주면서 하는 말이 “산기슭에 난 어린 소나무 싹을 캐다가 바닷가에 옮겨 심으라”는 것이었다. 볶은 콩을 얻어 먹는 맛에 아이들은 열심히 어린 소나무를 옮겨다 심고, 장무공은 옮겨 심은 소나무에 물을 주고 가꾸어 어느새 소나무밭이 바다를 끼고 수십리에 달했다. 그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나이가 드셨는데 뭣하러 소나무를 그렇게 많이 심으십니까?”하고 물었다. 장무공은 다른 말 없이 “장차 이 소나무들이 반드시 큰 힘이 될 것입니다.”하였다.

70여년이 지나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강화도 바닷가에 심은 소나무는 배를 만들고 수리하는 데 요긴하게 쓰였고, 그 뒤 다시 일어난 정유재란에 왜군이 침입했을 땐 임금이 피신할 거처를 마련하는 데 재목으로 사용됐다.

백년, 이백년씩 묵혀야 제맛이 난다는 서양의 고급 포도주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생산되는 것은, 내가 담근 술을 비록 내가 맛보지는 못하지만 먼 훗날 후손이 즐길 것이라는 마음으로 술을 담그기 때문이다. 먼 옛날 조상이 나를 위해서 마련한 술을 내가 마시니 나도 먼 훗날 내 후손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할 것 아니냐는 마음가짐으로, 그들의 포도주창고는 단 한 번도 비어 있는 일 없이 몇 백년 동안 대를 이어 물려진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서 내일을 모른다고 한다. 서둘러 올라갔다가 급히 떨어져 토룡(土龍)의 신세가 됐다고 한다. 길게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는 얘기들이다.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언제나 뒤를 먼저 본다. 역사라는 오랜 과거 속에서 나아갈 바를 찾게 되는 것이다. 장무공 황형이 어린 소나무 싹을 바닷가에 심어놓은 것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이다. 서양에서 오래 묵은 포도주가 계속 남아 있는 것도 선견지명이다. 2006년 세모를 맞이해 돌아보니 세월이 참으로 빠름을 실감케 된다. 그동안의 삶에 선견지명이 없었던 것 같아 뉘우쳐진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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