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시대·왜곡된 일상 작품에 투영
현대사회의 병폐를 대변하는 단어 몇을 고른다면 우울증, 자폐증, 폐쇄공포증 등이 아닐까.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의사소통 부재와 이기적인 태도가 회색빛 도시를 양산하고 있다.
이천의 한 간장 공장에 위치한 샘표스페이스는 왜곡된 일상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은 젊은 작가들을 한데 모았다. 오는 20일부터 내년 1월20일까지 열리는 ‘수상한 외줄타기-공장에 간 수상한 몽상가들’이 그것이다.
작가들은 철저히 구조화된 일상에 대해 냉소적인 입장을 취하며 ‘고독한 외줄타기’를 형상화시켰다. 먼저 노진아는 기계와 인간이 소통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정보의 교환을 통해 서로 닮아가는 존재론적 상황을 다뤘다. 그로테스크한 그의 작업방식은 복제된 인간의 형상들을 기계론적인 논조로 반복, 결합시켜 불안한 인간의 미래를 표현했다.
다양한 기호들의 움직임을 통해 정체성 없이 부유하는 자아와 타자의 대치 상황을 다룬 노해율은 공장 부속품처럼 기계적인 생명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배제되고 소외되는 모습들을 담았고 박지훈의 영상작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랑하는 남녀 육체가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을 연출, 심리적 공황상태과 포장된 인간의 욕망을 다뤘다.
슈퍼맨 등 대중적인 아이콘을 소재로 삼은 유영운은 가상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팝아트의 공허함을 표현했다. 그는 잡지를 재료로 몽상이 지닌 문화적 관계를 조명했다. 캐릭터와 우스꽝스럽고 왜곡된 이미지는 그 결과물이다. 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 잡지를 접거나 붙여 폐쇄적 증상을 실험하고 편집증적 행위를 옹호하거나 부정하는 입장을 균등하게 다뤘다.
최연우는 잡지 접기를 시도했다. 잡지 수천권을 끝없이 접고 접었다. 그는 대량의 전단지 낱장들을 모았다. 중앙에서 투영된 빛의 움직임이나 형체는 모호하고 몽환적이다. 작가의 작품은 애매하고 불확실한 인간의 현 상황을 대변하는듯하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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