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가 18일 공개한 지방세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은 우리나라 납세 실태를 한눈에 보여준다. 행자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일제히 공개한 체납자들은 1억원이 넘는 지방세를 2년 이상 내지 않고 있는 1천149명(개인 620명, 법인 529명)으로 이들의 체납액이 무려 3천602억원에 이른다.
체납자들의 면면과 행태도 놀랍다. 수억원대의 지방세를 체납하면서 버젓이 5선을 기록한 도의회 의장이 있는가하면, 국민의 4대 의무인 ‘납세의무’를 가르쳐야 하는 교장도 포함돼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13·14대 회장을 지낸 L씨, 대학총장을 지낸 L씨도 재산세를 체납했다.
물론 사정이야 없을 리 없겠지만 개인 체납자들이 이른바 부자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건 이상하다. 서울의 경우 327명의 개인 고액 체납자 중 18%인 59명이 강남구와 서초구에 살고 있어 의혹을 자아낸다. 이들의 체납액은 199억5천600만원으로 전체(826억원)의 24.2%를 차지한다. 현 주소를 서울에서 지방으로 옮긴 106명을 제외하면 강남권 고액체납자 비율은 더 커진다. 서울 고액·상습 체납자 중 221명(체납액 548억9천600만원)이 서울에 주소를 두고 있는데 이들 중 강남권 거주자는 26.7%, 체납액 비율은 36.4%에 달한다. 고액 체납자들은 주로 자녀나 친척집에 얹혀 산다고 말하는데 부자는 망해도 3년 간다더니 부자 개인은 망해도 가족은 망하지 않는 모양이다.
2천110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법인들은 주로 건설·건축업종(40.3%, 체납액 46.8%)에 몰려 있다. 업종자체가 부침이 심한 데다 IMF 이전 부동산경기가 붐을 이룰 때 앞다퉈 뛰어 들었다가 부도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대부분 회사가 부도났다고 하지만 막상 집을 찾아가면 사치스럽게 사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체납자들 상당수가 제일 비싸다는 강남구에 살고 있는 것도 혼란스럽다. 법적 틈새를 악용하는 수법이 날로 지능화돼 체납자가 아내에게 재산을 명의이전한 뒤 위장이혼을 하는데 이들이 평일, 주말을 가릴 것 없이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골프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 게 한 두번이 아니란다. “세금 폭탄을 맞더라도 재산세 좀 내며 살고 싶다”는 서민들에겐 소설 같은 얘기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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