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여군 헬기 조종사 피우진 중령이 11월 30일 강제 전역 조치됐다. 4년 전 유방암에 걸려 양쪽 유방을 절제했다는 사유에서다.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하는 김에 멀쩡한 나머지 유방까지 잘라낸 일이 문제가 됐다. 그것도 군 생활을 더 잘 하고 싶어서였다. “평소 항공비행 중 불편하다고 느낀 유방을 양쪽 다 절제해달라”고 간청해서 성사됐다. 이후 3년동안 그는 육군 항공단에서 군생활을 계속했다. 후유증도 없었다. 그는 이미 암 완치 판정을 받았고, 유방 없이 활동하는 데도 문제가 없어 군에 남길 바랐다. 전역 휴가 중이던 지난 10월 말, 해남에서 고성까지 800㎞를 23일 동안 걸어서 완주해내는 저력을 보였다. 국토종단을 하면서도 내내 빨간 마후라를 벗지 않았다. 다른 군인들에게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끝내 전역 당했다. 군인사법 시행규칙에 따라 암 병력 또는 유방절제술을 받으면 전역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인사법 시행규칙은 교조적이고 불합리하다. 암이 이미 완치됐고, 이후 아무 지장 없이 군 생활을 했다. 체력검정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음에도 오로지 암 병력과 양쪽 유방이 없다는 이유로 퇴역 처분을 내린 것은 군의 특수성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남성 군인과 똑같이 가슴이 없다는 게 문제될 줄은 몰랐다”는 그의 고통은 차치하고라도 완치된 암 병력, 군 복무에 전혀 지장이 없는 신체 부분을 이유로 강제 전역을 시키는 규칙은 속히 개정돼야 한다.
1979년 여군 27기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한 그는 여군 최초로 1000시간 비행기록을 수립했다. 육군 헬기 조종사 시절 항공호출명은 ‘피닉스(불사조)’였다. 가장 남성적인 조직인 군대에서 온갖 불리와 차별을 딛고 27여년 동안 군인을 천직으로 알고 복무해 왔다. 최초의 항공병과 여성 교관으로도 유명하다.
최근 자신의 군생활 역정을 담은 에세이집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피우진 중령은 전역하면서 ‘내가 남긴 발자국이 다음 사람에게 길이 되기를 바란다(今日我行跡 隊作後人程)’는 말을 남겼다. 국방부에 낼 행정소송이 승소해 그가 헬기 조종간을 다시 잡고 ’불사조처럼’ 하늘을 비행하였으면 좋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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