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의 이야기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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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세의 J씨는 서울에서만 택시운전을 37년 한 사람이다. 1970년 처음 운전대를 잡았다. 택시 말고는 다른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J씨의 기억으론 지금까지 택시기사로 가장 좋았던 시절은 박정희 대통령 때였다. 생활 물가가 워낙 쌌기때문에 승객이 좀 적어도 택시 운전하면서 그럭저럭 살았다.

1970년 초엔 아무나 택시를 못탔다. 일반 시민이 설렁탕 값보다 비싼 택시(기본요금 60원)를 타긴 힘들었다. 하루 사납금이 600원이었는데, 사납금 내고 남은 돈을 악착같이 모으면 한달 수입이 3000~4000원 정도됐다.

전두환 정부 시절 들어 서울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고 외곽이 커지면서 택시 운행 거리가 많이 늘었다. 그때 기본요금이 600원까지 오르고 택시가 대중화됐다. 택시기사한테는 전두환 정부 시절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하루 12시간 근무 중 잘 될 때는 서너시간 만에 사납금을 다 채웠다. 노태우 정부 들어 기본요금이 800원으로 올랐으나 5·6공 땐 전반적인 경기가 좋아서 손님도 많이 늘었다.

지금은 어렵다. 몇년 전만 해도 금방 손님이 탔는데 20분이 넘어가도 아무도 없다. 택시란 게 원래 중산층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인데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면서 잘 사는 사람들은 승용차가 있으니까 택시 탈 일 없고, 자가용 몰던 중산층은 기름값까지 많이 올라 지하철이나 버스를 탄다.

승객들이 하는 얘기 가운덴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많다. 원래 택시를 타면 정치 얘기를 많이 한다. 대통령이나 정치인들 욕을 많이 했는데 요샌 확 줄었다. 그냥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정치 얘기가 나오면 짜증을 낸다. 내년 대통령 선거 얘긴 가끔 나온다. 누가 돼야 한다, 누군 안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냥 빨리 선거를 치렀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누가 되든 지금보단 상황이 좋아 질 거라는 생각이 큰 것 같다.

외환위기(IMF) 때 충격이 워낙 커서 그런지 손님들의 말수가 많이 줄었지만 지금은 더 적어졌다. 그땐 그래도 정치하는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기라도 했으니 다행이었지만 요즘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말해 봐야 뭐하나 하는 생각에 입을 닫는 것 같다. 경기가 나아질 기미가 전혀 없어 거의 자포자기 상태가 된 것 같다. 정말 큰일 났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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