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긍회 경기문화재단 대표에게

그러니까 22년쯤 전인가요. 기억하실 줄 모르겠지만 취재 관계로 몇번 뵌 적이 있지요. 당시 MBC 교양제작국 부국장으로 다큐멘터리 ‘인간시대’를 맡고 계실 때 일이지요. 저는 서울신문에서 스포츠 기자로 있다가 주간물 ‘TV가이드’ 기자를 할 때이고요. 그후 서울시청으로 출입부서를 옮겨 더 뵐 기회가 끊겼지요.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인간시대’는 사람 냄새가 살아 꿈틀거리는 휴머니티의 백미였습니다. 매주 방영되는 분을 한 주간 앞서 장르와 내용 그리고 비화 등을 미리 소개하곤 했지요. 그 무렵 안국정 SBS 사장은 KBS 교양제작국 부국장으로 교양물 제작의 두 왕PD가 쌍벽을 이루면서 오늘의 방송문화가 있도록 선도하셨잖습니까.

일찍이 MBC 사장이 되셨을 땐 내심 기뻤습니다.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오셨을 땐 반가웠고요. 그런데 돌연 사표를 냈다니 섭섭합니다. 오죽했으면 부임 3개월만에 그만 둘 작심을 했겠나 하는 짐작은 갑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세상사에 능소능대(能小能大) 한 분이 아닙니까. 왕PD 시절 그 많은 제작진의 사기를 북돋아 일사불란하게 통솔한 통큰 맏형이면서도 제작비가 남으면 반납했던 당당한 분이었잖습니까.

만약 지방에서 일하는 게 생리에 맞지 않다고 여기신다면 그것은 오만일 뿐, 이긍희 대표이사 본연의 면모가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소임과 조직을 보고 일하노라면 행여 언짢은 엉뚱한 상흔의 유탄이 있을지라도, 까짓 것 대수롭지 않게 털어버릴 수가 있지 않을까요.

부임할 때의 웅지는 어디다 버리고 그만 두신다는 겁니까. 기전문화(畿甸文化) 개발의 부가가치는 지고하고 방대합니다. 일속에서 일을 만들어가며 하려면 얼마든지 신명나게 할 수 있고, 당신은 능히 그럴 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일단 사표를 냈다니 철회하긴 어렵겠지만, 만약 기회가 닿으면 더는 고집하지 마십시오. 잘은 모르겠으나 지나친 겸양 또한 비례(非禮)라 했으니까요.

갑자기 이런 글을 드리게 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연히 만날 자리도 없었고, 그렇다고 또 우정 찾아가는 것도 겸연쩍한 일이어서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됐군요.

아무튼 결과를 지켜보겠습니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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