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처럼 이상한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평소엔 서로 삿대질과 몸싸움을 일삼다가도 예산안 심의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느냐는듯 여·야가 한 통속이 돼 거래를 한다. 그 모습이 보기에 심히 역겹다. 지난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제1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에산안이 통과된 것에 비하면 겉으론 나아진 것 같지만 새해 예산안을 다룬 지난 27일 새벽 본회의 내용은 더 고약했다 .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지만 법정 시한(12월 2일)을 한참이나 넘겼다. 명백한 헌법 위반인 데도 여·야 할 것 없이 누구 하나 미안해 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는다. 되레 당연한 듯 여기는 같아 할말을 잊게 한다. 사학법에 발목 잡혀 해를 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해 안에 처리된 게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더욱 큰 문제는 형식 보다 내용이다. 심의는 강도 높게 했지만 결국은 여·야 흥정으로 끝났다. 예산 삭감액이 미리 정해지고 세부예산이 짜맞춰지는 모습이 재연됐다.
통과된 새해 예산안(일반회계+특별회계)은 163조3천500억원 규모다.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해 1조3천400억원을 삭감했지만, 대선을 맞아 선심성, 정치성 예산에 대한 여야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예결위 심의 과정에서 1조500억원을 증액했다. 자신들을 위한 의정활동 지원비 등 ‘제몫 챙기기’도 증액했다.
특히 사회복지와 일자리 창출 예산 등 양극화를 완화하고 소외계층을 돌볼 예산이 대폭 깎인 반면 도로건설 지역개발 등 선심성, 민원성 예산은 크게 증액돼 또 한번 실망을 줬다. 당리와 정치적 계산 속에서 나온 선심을 소외 계층의 삶보다 우선 순위에 두는 정치인들의 의식구조가 정말 안타깝다.
국회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예산안과 한묶음인 예산 부수법안(조세특례법 개정안)은 부결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졌다. 여·야 다툼과 의원들의 무지가 낳은 결과다. 새 임시국회를 여는 방편으로 잘못을 바로 잡기는 했지만 도대체 의원들이 제정신을 갖고 있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고서 어떻게 국회의 권위를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오죽하면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을 지키던 경위들이 “한심하다, 한심해!”하고 장탄식을 하였겠는가. 2007년엔 국회의원들이 제발 정신 좀 똑바로 차렸으면 좋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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