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년

조선시대에 한 해의 농사 등을 신에게 고하는 제사로 납향 또는 납평제가 있었다. (동국세시기) 동지 후 세 번째 염소날(未日)로 정해 이에 제물로 올리는 게 멧돼지다.

경기도 산간지방 수령들은 이 멧돼지를 잡는 것이 일이었다. 정조는 백성들이 멧돼지 몰이에 동원되는 폐단이 심한 것을 알고는 그같은 관습을 금지시켰다. 서울의 포수들로 하여금 사냥해오도록 했다.

돼지는 자고로 땅을 맡고 있는 신령, 즉 지신(地神)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식성이 땅에서 나는 건 뭣이든 다 잘 먹는 잡식성인 데서 유래한다. 예부터 잘 먹는 것은 곧 복(福)으로 쳤다. 돼지꿈이 재운(財運)으로 풀이되는 연유 또한 이 때문이다.

조정에서 올리는 제사 뿐만이 아니고 동제(洞祭)나 고사를 지내는데도 돼지를 제물로 쓴다. 다만 집돼지 머리를 올려놓고 절을 하는 것은 멧돼지 머리는 구하기가 쉽지않기 때문이다.

돼지는 꽤 오래 전부터 가축화된 동물이다. 부여에서는 돼지를 일컫는 ‘저가’(猪加)란 벼슬이름이 있었다. 적어도 2천년 전부터 돼지를 집에서 사육한 것으로 전한다. 돼지는 세계적으로 1천여 품종이 있다. 전래의 토종 돼지는 검정 색깔로 주둥이가 길고 몸집이 작으면서도 체질이 강건하여 질병에 잘 안 걸렸다. 산업화시대에 영국이 원산지인 버크셔종, 요크셔종 같은 몸집 큰 개량종이 수입되면서 재래종은 자취를 감췄다.

돼지고기는 어느 부위든 맛이 있다. 특히 삼겹살은 대중적 육식이 됐다. 약효로는 허파는 해소병에 좋고 안질에는 돼지간 그리고 돼지발을 고아 먹으면 임신부의 젖이 잘 나온다. 이밖에도 좋은 효능이 많지만 함께 먹어선 안 되는 음식궁합의 금기식품도 있다. 동의보감은 매실 도라지 연뿌리 등을 같이 먹으면 설사를 한다고 했다. 도꼬마리·화채·붕어·계란·노란콩·자라고기·생강 같은 것도 함께 안 먹는 것이 좋다.

올해는 육십갑자(六十甲子)의 스물넷 째인 정해(丁亥)년 돼지띠다. 재운을 부르는 돼지의 돼지해에 아무쪼록 경제가 잘 돌아 사람살기가 나아지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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