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내조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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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르윈스키 스캔들에 처했을 때 부인 힐러리 여사가 한마디 불평도 없이 조용히 참고 지낸 건 유명한 얘기다. 남편이 퇴임한 뒤 자신의 자서전에서 “아내로서 나는 클린턴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고 털어놨지만 “그는 세계를 이끄는 지도자였고, 나의 내조가 필요했다”고 클린턴을 치켜 세웠다.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 힐러리가 상원의원으로 차기 대통령 자리를 바라보고 있지만, 클린턴이 가급적 힐러리 주변에 나타나지 않는 게 외조 활동이란다. 실제로 이들 부부가 함께 지내는 날이 한달에 절반도 안 되는 평균 14일 정도라고 하니 어지간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남성 정치인들도 아내의 내조는 필수적이다. 유권자들과 늘 가까이 접촉해야 하며, 밤 늦게까지 술자리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집안 식구들의 불만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런 불만이 그대로 외부에 노출되면 남편의 정치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왕년의 정권 실세였던 남편의 부도덕적인 생활을 아내가 자전적 소설로 써 개(?)망신을 준 적이 있었지만 정치인을 남편으로 둔 여성은 싫어도 내색을 못하고 꾹 참고 지낼 수밖에 없겠다.

그런데 요즘 여야 대선주자 부인들의 ‘내조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고건 전 총리 부인은 고 전 총리의 옷을 고르고 건강을 챙기는 데 신경을 쓴다. 민심을 전하는 것도 부인의 몫이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부인은 내조자라기 보다 ‘동지’다. 한반도재단 이웃사랑나누기 자원봉사단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 부인은 약대를 나와 ‘남편의 건강 챙기기’가 예전부터 남달랐다. ‘100일 민심대장정’ 기간 중엔 밤샘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열흘에 한번씩 찾아와 빨래를 하였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부인은 남편으로부터 ‘집에서 야당’이란 말을 듣는다. 비판적 여론을 가감없이 전달하고 언론에 나온 부적절한 표현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부인은 가정 분위기를 밝고 화목하게 유지하려고 애쓴다. 술자리가 잦은 요즘엔 쌀뜨물을 받아 끓인 물을 준비해 남편의 속을 편안하게 해준다.

대선주자 부인들의 내조는 당연한 일이고 그럴 리도 없겠지만 만일 클린턴처럼 백악관안에서 르윈스키와 같은 ‘사고’를 치면 어떻게 대응할 지 문득 궁금해진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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