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은퇴 후 중산층 생활을 하려면 7억원이 있어야 한다는 세상이다. 소박하게 잡아도 한달에 200만원이 필요하단다. 그런데 현대건설 상무를 지낸 김영진씨가 충주 근교 산자락에 살면서 쓰는 월 생활비는 51만원이라고 한다. 쌀값을 포함한 식비가 5만원, 찬거리는 텃밭에서 기르는 채소와 이웃들이 주는 것으로 족하다. 제일 많은 지출이 경조사비 20여만원이고, 잡비는 7만원 정도인데 월 한 두차례 보는 영화비를 빼곤 대부분 책값이란다. 대기업의 간부를 지낸 인사의 생활이 매우 검소하여 화제가 됐었다.
지난해 10월 22일 별세한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의 유품들이 ‘월간조선’에 공개됐다. 대통령 특보 시절인 1973년부터 33년간 살았던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의 자택이 연탄보일러를 사용한다면 믿어지지 않는다. 최 전 대통령은 국무총리 시절 1979년 제 2차 오일 파동 때 탄광 시찰을 가서 만난 강원도 장성탄광의 광부들을 보고는 “나만이라도 끝까지 연탄을 때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후 집 내부는 난로와 석유곤로를 써야 할 정도로 냉골이었지만 최 전 대통령은 끝까지 연탄보일러를 고집했다고 한다.
최 전 대통령의 안방에 있는 에어컨은 너무 구식이고 소리가 커서 평소에 손님이 오기 전에 켜 놓았다가 오면 아예 꺼버렸다. 선풍기는 장녀 종혜씨가 태어난 1953년에 만들어진 ‘나쇼날’ 제품이다. 닳고 닳아 있는 ‘태화고무’ 상표의 흰 고무신과 슬리퍼도 최 전 대통령이 끝까지 썼던 물품이다. 서거하기 전 까지 매일 뉴스를 듣던 라디오 역시 1970년대 초에 생산된 ‘금성 RF-745’ 제품이었다. 플라스틱 이쑤시개는 최 전 대통령이 식후에 정성스럽게 닦아서 재활용했다고 한다.
2004년 7월 타계한 최 전 대통령 부인 홍기(洪基) 여사도 자택 마당에 있던 샘물에 펌프를 설치하고 직접 손빨래를 했다. 장관 시절이나 국무총리 시절이나 가정부를 두지 않았다. ‘일기장’이라고 표지에 적힌 수첩을 마련해놓고 콩나물과 반찬거리를 사고는 액수를 적어 가계부처럼 사용했다.
기업인 김영진씨의 은퇴 후 전원 생활과 최규하 전 대통령 부부의 삶은 세상 사람들에게 ‘가난하게 사는 법’을 일깨워준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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