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대통령들도 정치 갈등과 여론의 반발 속에서 늘 압박감에 시달렸다. 워싱턴과 링컨, 루즈벨트와 케네디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22대 대통령 클리블랜드는 남북 전쟁 이후 최초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었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늘 노동자 편에 섰다. 1886년 연두교서에서 그는 노동착취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노동조합을 합법화하는 법안에 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1894년 철로를 차단한 철도노동자 파업이 파국으로 치닫자 그는 이대로 가다간 국가의 운명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의 선택은 군대를 보내 파업을 진압하는 것이었다. 연방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군사행동을 한 것은 남북전쟁 이후 최초의 일이었다.
클리블랜드는 이 사건으로 노동자의 지지를 잃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국민은 그의 과감한 행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닉슨 대통령은 열렬한 반공주의자였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란 명칭을 공식 인정하고 중국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중국을 국제사회 밖에 영원히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신념을 가졌다. “차라리 쿠바의 카스트로를 방문하라”는 야당의 빈정거림을 극복하고 닉슨은 중국과의 관계에 물꼬를 텄다. 나중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지만 닉슨의 중국 방문은 탁월한 정치외교술을 보여준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9일 개헌 제의를 하면서 정치권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대통령 중임제(重任制) 대신 연임제(連任制)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연임’은 ‘잇따라 직을 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연임제는 현직 대통령이 재임 중에 치러지는 다음 대선에 출마해서 당선될 경우 연이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의 개헌 제의는 위기에 처했던 미국 대통령들의 사례를 본 뜬 것 같지만 너무 황당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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