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글씨 교육을

현대인들은 글씨를 잘 안쓴다. 컴퓨터의 일상화가 글씨 쓰는 것을 잠식했다. 그만큼 편리해졌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했다. 옛 사람들은 글씨 잘 쓰는 것을 사람을 보는데 세번 째 기준으로 삼았다. 달필, 명필은 인격을 평가하는 데 그만큼 높은 가치를 발휘했다. 지금은 공무원들도 컴퓨터로 다 처리하다 보니 달필이고 졸필이고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산업화시대까지만 해도 공무원이 될려면 글씨를 잘 써야 했다.

학교 교육에서도 이젠 글씨를 잘쓰고 못쓰고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됐다. 학생들도 컴퓨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과정에서부터 글씨 쓰는 건 도외시되다 보니 요즘 학생들의 글씨는 더욱 엉망이다.

그러나 글씨는 표현의 2차적 수법이다. 말에 이어 두번째 표현 수법이 글씨인 것이다. 노트북을 포함한 컴퓨터는 3차 수법일 것이다. 기왕이면 글씨는 잘 쓰는 게 좋은데도 철저히 무시되는 게 과연 좋은건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주 오래 전이다. 초등학교 교육에 습자(習字) 시간이 있었다. 붓글씨 쓰는 것을 습자라고 한다. 잘 쓴 붓글씨는 교실 뒷벽 게시판에 본보기로 붙여놔 학생들의 경쟁심을 유발하기도 했다.

붓글씨는 한문문화권의 산물이다. 한·중·일 동양 삼국에서만 쓰는 것이 붓글씨다. 이들 동양삼국은 식탁에서 젖가락을 쓰는 공통된 문화를 갖고 있다. 즉 젖가락문화와 붓글씨문화는 손재주를 이용하는 점에서 같다할 수가 있다.

요즘 노년층이나 주부들 가운데서 여가 취미로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서예는 서도(書道)를 일컬어 예술이라는 뜻의 표현이며 서도는 붓글씨를 말한다. 서예는 곧 붓글씨인 것이다. 붓글씨를 배우는 성인들의 말은 한결같다. 붓글씨를 쓰면 마음이 안정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정서의 순화를 가져오는 것이 붓글씨 쓰기인 것이다. 흰 종이 위에 검은 먹물로 한 획, 한자씩 정성들여 쓰는 마음 가짐은 바로 도(道)를 닦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어른들만이 아니다. 학교에서도 습자든 서예든 붓글씨 쓰는 법을 가르치면 좋은 것 같다. 정규 교과가 어려우면 특활 과제로도 괜찮을 것이다. 붓글씨로 심성을 다듬는 서도는 학생들의 더 할 수 없는 인성교육이라 할 것이다. 편리한 건 좋지만 또 편리한 것 만이 능사는 아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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