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한글날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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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은 훈민정음 반포일인 세종 28년(1446년) 음력 9월 ‘상한(上澣)’을 기준으로 상순의 끝날인 9월10일을 양력으로 환산, 10월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고 있지만, 북한은 훈민정음 창제일(세종 25년 음력 12월)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월15일을 ‘한글날’로 기념한다.

창제일은 ‘세종실록’과 ‘훈민정음해례’를 근거로 했다. 이는 훈민정음이 그 이전에 존재했던 전통문자를 계승했다는 북한 학계의 인식에서 비롯됐다. 북한은 5천년 전 평양 일대를 중심으로 번성했다는 이른바 ‘대동강문화’에서 ‘신지(神誌)글자’를 만들어 썼으며 이 문자가 고조선, 삼국, 고려를 거쳐 훈민정음 창제에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그러나 “훈민정음 창제가 글자생활 발전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며 훈민정음 자체의 우수성과 민족 언어생활에서 ‘전환점’으로의 역할은 높이 평가한다.

2001년에 출간된 ’조선대백과사전’은 훈민정음에 대해 “세종의 직접적인 주관 밑에 정인지·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현로들이 집체적인 지혜를 모아 만들었다”며 “가장 발전된 글자로 여러 가지 우수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기술했다.

북한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의 백은혁 학사(석사)는 작년 1월 평양방송에 출연, “훈민정음은 우리 인민이 이룩해 놓은 훌륭한 민족적 재부”라며 “훈민정음 창제는 인민의 언어 생활과 민족의 역사와 문화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열어 놓은 거대한 문화사적 사변”이라고 극찬했다. 한글이 한민족의 자랑스런 유산이자 문화발전의 바탕이라는 인식은 남북한 공통임에 틀림없다.

북한은 정권 수립(1948년 9월9일) 이전부터 한자어와 ‘왜색풍’의 말을 손질하기 시작해 1966년부터 본격적으로 외래어를 ‘문화어’로 고쳐 1970년대 초까지 5만여 개의 새 어휘를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고유어를 쓰고 한자어나 외래어는 되도록 쓰지 말자’는 주의다.

특히 한자어와 외래어는 “민족어의 어휘구성에 들어온 이질적인 요소, 민족어의 고유성과 순결성을 파괴하고 좀 먹는 독소”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민족어가 외래어와 범벅이 돼 잡탕말로 변하면 민족어의 민족적 특성이 희미해지고 민족의 넋도 깨끗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한글과 우리말을 사랑하는 북한의 정책은 본받을 만 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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