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배가 하도 고파 빵 한 조각을 훔친 죄가 계기가 되어 무려 19년이란 긴 세월의 형기를 치른다.
한 조각의 빵, 그것은 먹다가 버린 부스러기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배고파 허기진 사람에겐 생명 줄인 것이다. 가정에서도 음식점에서도 먹다가 남은 음식물쓰레기가 마구 버려진다. ‘시어머니가 구정물통속 밥티끌 보고 며느리 쫓아낸다’던 속담도 옛말이 됐다.
그러나 배고픈 사람들이 없는 게 아니다. 라면 같은 먹거리 좀도둑이 성화라고 한다. 특히 대형 유통업체에서는 더 심한 모양이다. “IMF 때의 일이 재발됐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이젠 그같은 먹거리 좀도둑은 없어진 줄 알았는데 근래 다시 도졌다는 것이다.
점심 굶는 결식아동이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밥 굶는 아이들이 더 늘었으면 늘었지 줄진않는 실정이다. 즐거워야 할 초등학생의 수학여행이 되레 괴로운 아이들이 적잖다. 수학여행 갈 경비를 낼 수 없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이다. 학급마다 딱한 이런 아이들이 몇 명씩은 있다는 것이다. 이래서 원래의 분담 경비보다 ‘십시일반’으로 좀 더 거두어 어려운 아이들 몫을 대납한다고 한다.
이 설움, 저 설움해도 배고픈 설움만큼 더 한 것은 없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고는 인생을 말하지 말라’는 것은 신파극의 대사만은 아니다. 아이도 아닌 어른이 제 먹을 것이나, 제 식구 먹일 것 하나 벌이 못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긴 하다. 하나, 살다가 보면 때로는 움쭉달싹 못하는 삶의 함정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IMF 외환위기 때나 있었던 먹거리 좀도둑이 다시 성화인 것은 이도 어려운 민생의 세태 반영이다. 세상은 이토록 살기가 고단한데도 자기의 책임이 아니라고 우기는 청와대 권력자가 있다.
장발장은 출옥 후 성당의 은촛대를 훔쳤으나 신부의 자비로 인간의 사랑에 눈을 뜨고는 마침내 남을 위하는 새 사람이 됐다. 이 시대엔 민생을 책임지는 권력자도 없는데다가 먹거리 좀도둑을 일깨우는 사회의 자비도 있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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