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가 논문 표절 논란을 빚어 온 이필상 총장에 대한 교수들의 투표 결과 재신임을 받았다고 14일 밝혔다. 재적 교수 1천219명 가운데 478명이 참여(투표율 39.2%)해 424명이 재신임에 찬성(88.7%)했다고 한다. 신임투표 결과가 이렇게 나옴에 따라 당초에 이 총장은 총장직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적지 않은 교수들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투표율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 점이다. “신임 의사를 밝힌 교수는 전체 3분의 1에 불과하다”며 “겨우 이 정도로 자신이 교수들로부터 신임받았다고 생각한다면 조만간 뜻있는 처장과 학장들의 사퇴가 이어질 것”이란 주장도 나왔다. “학문적인 문제를 투표로 결정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은 거의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대학측과 일부 교수들은 “방학중이라 해외에 나가 있는 교수들이 많았고 일부 단과대에서 조직적으로 투표 거부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투표율이 낮았다”면서 “대통령 선거도 투표율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만큼 결과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총장파’와 ’반총장파’의 입장이 팽팽함에 따라 재단이 투표결과를 수용해 총장 유임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투표로 이 총장의 논문 표절의혹이 해소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총장측도 여러 차례 “일종의 여론 조사”라며 “표절 여부와 상관 없이 지지도가 낮으면 물러나가겠다는 뜻”이라고 밝혀왔었다.
재단은 사태 조기 수습을 위해 표절 여부를 가리는 데 집중할 것으로 전해졌다. 재단 사무국장이 “외부 인사들로 자체 조사위원회를 꾸려 사실 관계를 규명하겠다”며 “ 이 총장에 제안한 신임 투표와 재단의 조사는 별개”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사실 이필상 총장 입장에서 생각하면 억울한 건 당연하다. 타교 출신으로서 어려운 입지를 딛고 총장에 지명됐으나 반대세력의 조직적 저항에 부딪힌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임투표에서 이겼다. 불신임을 받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다.
그러나 이필상 총장은 어제 15일 사퇴를 발표했다. 재신임을 받았을 때 당당히 물러났다. 논문 표절 의혹에서 시작된 이번 사태는 갖가지 음모론까지 양산해 내며 고대측에 심각한 대외이미지 손상과 내부 갈등이라는 두가지 상처를 남겼지만 곧 치유될 것이다. 이 총장의 용단에 경의를 표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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