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事故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기자페이지

과천 서울대공원에 살던 천연기념물 202호 두루미는 2004년 2월 조류인플루엔자 방역작업에 놀라 날아오르다 철망에 부딪혀 간이 파열돼 목숨을 잃었다. 평균 수명 50년인 이 두루미의 나이 겨우 두 살 때였다. 2005년 11월 국제 보호종인 바라싱가 사슴의 4개월 된 새끼는 비둘기 포획망이 넘어지자 놀라 날뛰다 철망을 들이 받고 죽었다. ‘히말라야의 진객’이라며 2005년 봄 들여온 포유동물 렛서팬더 한 쌍 중 네 살짜리 수컷은 작년 8월 간염으로 불귀의 객이 됐고 몸값 1천322만원도 허망하게 날아갔다. 349종 3천여 마리에 달하는 서울대공원 동물 대부분이 이렇게 제 수명을 못 누리고 질병이나 사고로 삶을 마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공원이 작성한 ‘폐사동물 사인(死因) 분석’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6년 10월까지 죽은 516마리의 동물 중 ‘늙어서 죽은’ 동물은 전체의 6%에 불과한 31마리였다. 나머지 동물 중엔 폐와 장 관련 질환을 앓다가 죽어간 동물이 유독 많았다. 장염으로 죽은 동물은 3년간 119마리(23%)에 달했다. 한창 소풍철이던 작년 5월23~28일 엿새 동안 한데 어울려 사는 큰고니·검은고니·캐나다기러기 등 물새 20마리가 집단 장염 발발로 떼죽음 당했다. 먹이를 잘못 먹은 한 마리가 장염을 퍼뜨린 것이다. 폐렴으로 죽은 동물도 42마리나 됐다. 넘어지거나 부딪치는 바람에 뼈가 부러지거나 피를 흘려 죽은 ‘사고사(事故死)’는 15%에 달하는 79마리였다.

1984년 문을 연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국내 최고라지만 좁고 낡은 우리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002년에는 콘크리트·철창 속 동물의 비참한 삶을 다룬 ‘슬픈 동물원’이란 보고서가 외부에서 발간돼 충격을 줬고 대공원에선 “2012년까지 우리를 다 개선하고 동물도 20% 줄여 친환경적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과천에 디즈니랜드를 유치하겠다’고 공언한 뒤 대공원 이전설이 나돌자 서울시가 지원을 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동물원이 자체적으로 다시 ‘서바이벌 플랜’을 수립, 기존 우리를 ‘준(準)사파리공원’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갇혀 있는 것도 서러운데 동물들이 병으로, 사고로 죽게 해서는 안 된다. 천수를 누릴 수 있도록 사람들이 돌봐주어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