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평양에 납치된 자국민들을 버리지 않는 집념은 알아줄만 하다. 납치된 13명의 자국민 신원을 2002년 9월에 확인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그해 10월 방북해 5명을 데리고 귀국했다.
1977년 피랍될 당시 13세이던 요코다 메구미와 남한의 선유도에서 역시 1978년 납북된 고교생 김영남이 성장하여 결혼해서 낳은 딸이 김혜경이란 사실은 일본 정부가 4년간에 걸친 유전자(DNA) 검사 등 추적조사 끝에 밝혀져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 정부가 김영남의 피랍 사실을 확인하고도 손 놓고 있었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일본 정부는 아직도 북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 자국민 피랍자 말고도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이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다. 피랍자를 모두 데려가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방침이다. 일본이 이를 위해 북에 취하는 조치는 그들의 주권에 관한 일이다.
그러나 외교 문제란 게 있다.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은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에 단 1엔도 지원할 수 없다”고 했다. 오늘 하노이에서 갖는 북·일 국교 정상화 워킹그룹 회의를 앞두고 그같이 말했다. 워킹그룹 회의는 6자회담 2·13 합의에 의한 것이다. 핵 불능화 조치에 따른 에너지 지원도 이 합의사항에 속한다.
다시 말하면 ‘단 1엔도 지원할 수 없다’는 대북지원에 관한 일은 일본인 납치 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핵 무기 불능화 조치를 둔 일을 갖고 자국민 피랍 문제를 결부시키는 것은 2·13 합의의 외교 관례를 어기는 처사인 것이다. 북·일 국교 정상화도 좋고, 일본인 피랍자 해결을 위한 노력도 물론 좋다. 그러나 일은 가닥을 잡아 추진해야 된다. 국교 정상화나 피랍자 일을 두고 다른 대북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2·13 합의의 대북 지원을 연계시키는 것은 그들의 임의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다.
하긴, 일본 정부는 꿩 먹고 알 먹자는 속셈으로 6자회담에 임했다. 북의 핵 무기도 핵 무기이지만 피랍자 문제 해결의 수단화를 노렸다. 남의 밥상 머리에 같은 사람이 숟갈을 두 개 들고 밥 그릇 하나를 더 챙기는 형상인 것이다. 원래가 일본은 이런 사람들이다. 간교하기가 이를데 없다. 북이 일본인 납치 문제에 어떻게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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