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드라마의 虛實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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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끝난 TV드라마 ‘주몽’(MBC)이 역사학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됐다. “고구려 시조의 이름은 주몽(朱蒙) 아니라 추모(추모(鄒牟)다”, “삼족오(三足烏)는 고구려 국기나 상징이 될 수 없다”는 게 대표적인 주장이다.

서길수 서경대 교수는 “주몽은 추모의 중국식 표기일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글자를 빌려 써 추모를 비하했다”고 지적했다.

414년에 세워진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와 5세기 중엽의 고구려 모두루무덤에는 고구려의 시조를 추모로 표기했지만 6세기 중엽 이후 편찬된 위서(魏書)·주서(周書)·북사(北史)·수서(隋書)엔 주몽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주(朱)’자는 ‘난쟁이(侏)라는 뜻이 있고 ‘몽(蒙)’자는 ‘속이다’, ‘어리석다’는 뜻으로 고구려의 시조를 ‘어리석은 난쟁이’로 폄하한 작명(作名)”이라며 “일본의 창씨개명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드라마에서 삼족오가 고구려의 상징이나 국기처럼 사용됐지만 후기 고구려 벽화를 보면 고구려의 최고 상징으로 등장한 것은 해(까마귀)나 달(두꺼비·토끼)이 아닌 청룡·백호·현무·주작 등 4신”이란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빌려 북부여 왕이었던 해모수와 동시대 인물은, 금와가 아니라 그의 부친이자 동부여왕인 해부루다. 금와를 해모수의 손자라고 서술한 ‘삼국유사’를 참고하더라도 두 사람은 드라마에서처럼 친구사이있을 리가 없다.

드라마에서 계루국 지배층인 소서노-우태의 아들로 묘사된 비류와 온조도 주몽의 아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서 교수의 주장이다.

이 설을 받아 들인다면 주몽은 부여를 탈출한 뒤 졸본에 와서야 소서노를 처음 만났을 것이며, 따라서 드라마 전반부의 큰 축을 이뤘던 부여의 왕자 대소와의 삼각관계는 성립할 수 없다.

또 주몽의 모친인 유화부인은 고구려 건국 후에도 14년을 더 살다가 사망하는 게 맞고, 극중에서 한나라와 결탁해 주몽에 대항하는 비류국 왕 송양은 고구려 개국 공신으로 주몽과 사돈까지 맺었다고 말한다. TV드라마 ‘주몽’이 인기리에 방영된 건 사실이지만 이런 오류가 있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픽션이 작가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이라고 하더라도 그 픽션을 구사하는 ‘룰’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TV 드라마의 대가 신봉승 선생의 말이 생각난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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