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0년대 후반 일본은 베이비붐을 맞았다. 격렬한 학생운동과 급속한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일본 사회의 중추로 자리 잡은 이들은 ‘단카이 세대’라고 불린다. 급속한 경제개발의 필요성과 가부장적 관습 속에서 살아온 이들은 정년퇴직을 앞두고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아내 중 상당수가 정년퇴직하는 남편을 멀리하는 풍조가 생긴 것이다. 아직까지 대다수 단카이 세대에게 이혼은 금기 중 하나라서 ‘황혼 이혼’을 실제로 감행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러나 올 4월 개정될 이혼법이 실행에 들어가면 사정이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이젠 아내도 결혼기간 중 남편이 납입한 연금의 50%까지를 지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사카에 사는 데라카와 여인은 남편과 같은 집에 있다는 생각만으로 위통과 피부발진에 시달리고, 남편과 자신의 옷을 한꺼번에 세탁하지도 못하며 수백 개의 봉제인형을 수집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남편이 집에 있다는 생각만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아나오고 심한 위통이 찾아왔다. 어떤 때는 먹은 걸 다 토해내기도 했다. 남편하고 같은 방에 있기만 해도 몸이 아팠다”고 말할 정도다. 도쿄 외곽에 사는 아오야마 여인은 남편이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게 너무 막막해 퇴직을 미루도록 남편을 설득했으며, 엔카 가수에 빠져 스트레스를 푼다. 아오야마 여인은 “남편이 정년퇴직을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생활을 하게 될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BS TV가 그제 오후 10시 50분 방영한 시사다큐멘터리 ‘젖은 낙엽 - 은퇴 남편 증후군’ 내용이다. ‘젖은 낙엽’은 퇴직 후 천덕꾸러기가 된 늙은 남편을 일컫는 신조어로 ‘황혼 이혼’과 함께 최근 몇년 사이 유행했다. ‘젖은 낙엽 - 은퇴 남편 증후군’은 영국 BBC가 제작해 올 1월 방송한 것으로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경험하고 ‘단카이 세대’의 대거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전했다. ‘남자가 밥을 먹을 때 맞은 쪽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는 등 일본 여성을 남자에게 가장 순종을 잘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한국남자들에겐 뜻밖이다. 정년이 되도록 직장생활에 충실한 남편을 ‘생각만 해도 몸에 두드러기가 날 지경’으로 싫어한다니 일본 남자들도 참 불쌍하게 됐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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