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기생’ 망언

기생은 천민이다. 천민이지만 기생이 되긴 쉽지 않았다. 창(唱)을 잘해야 하고 장구와 북도 칠줄 알아야 했다. 시화나 서예도 능해야 했다. 권번(券番)은 기생학교다. 한성권번, 평양권번은 1945년 광복과 함께 없어진 마지막 기생학교였다. 기생은 아무 남자나 근접할 수 있는 ‘노류장화’의 신세였지만, 예인(藝人)의 자긍심과 지조를 지닌 기생이 많았다.

명기 황진이는 시조시인으로 고대 국문학의 별이다. 송이 등을 비롯한 시기(詩妓)는 이밖에도 많다. 이매창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 인조반정의 공신 이귀 등과의 교분이 두터웠다. 1919년 3·1운동 당시 기생조합만세운동이 있었다. 수원·진주·통영·해주 등지의 기생들이 독자적인 만세운동을 벌인 것이다. 그해 3월29일 수원기생조합 기생들은 수원경찰서 앞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모임을 가졌다. 이에 앞장선 김향화는 일경에 붙잡혀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그 옛날 논개의 후예들은 이만이 아니다. 서울 명월관 기생 산홍은 거물 친일파 아무개가 거금을 건네며 첩으로 앉히려하자 “기생에게 줄 돈이 있으면 나라를 위해 피흘리는 젊은이들에게 주라”며 거절한 것이 화근이 되어 종로경찰서 고등계에 끌려가 뒷배를 대라는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제2차대전 때 일본이 한국인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망언을 한 아베 일본 총리가 과거에 기생을 빗대어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또 드러났다. ‘한국은 기생집이 많아서 위안부 활동같은 것이 생활속에 녹아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한 것이다. 게이샤는 일본의 기생이다. 일본은 아직도 게이샤가 있어서 한국에 기생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진 몰라도 기생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다. 아베의 인식은 전통적인 기생문화를 모독하는 망언이다.

일본은 패전 직후 일본 주둔 미군사령부에 다각적인 로비를 집요하게 벌였다. 일왕의 전범재판소 회부를 막기 위해서다. 결국 일왕은 전범을 면했지만, 미군들에 대한 일본 여성들의 성 제공은 그같은 로비의 하나였다. “나는 나라를 위해 미군들에게 일하고 있으니 너도 빨리 귀국해서 함께 일하자”는 편지는 일본의 언니가 한국에서 교사로 있었던 동생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아베는 전후 세대다. 그렇다고 위안부 강제 동원이나 전후 일본 여성의 섹스 로비를 모를리는 없을 것이다. 전후세대여서 정말로 몰라 망언을 일삼는다면 정치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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