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설흔 살때까지 갈릴리지방 나자렛에서 양부 요셉을 도와 목수 일을 했다. 그의 공생애 3년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팔레스티나 각지를 돌며 하나님(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시작됐다.
마침내 로마 군사에 의한 핍박이 극에 달할 것을 안 제자들은 피신할 것을 권하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하며 거절했다. 마침내 체포되어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으로부터 사형이 선고됐다. 예루살렘 교외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당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여 감람산에서 승천한 것이 예수의 말년이다.
공자(孔子)가 빛난 것은 그의 생애 말년이다. 춘추시대 여러 나라를 돌면서 제후들에게 덕치의 이상주의를 강론했다. 그러나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렇게 천하를 주유한 그는 행색이 말이 아니어서 거지꼴이 되기도 했다. ‘상가집 개같은 몰골’이라는 일화가 있었다.
공자가 진가를 보인 것은 나이 칠십이 다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을 기르면서 시작됐다. 오늘날 전하는 유가(儒家)의 사서삼경(四書三徑)이 이 무렵에 비롯되어 집대성 됐다. 그의 고향엔 서수라는 강이 있다. 하루는 제자들과 더불어 강물이 흐르는 서수를 바라 보면서 “세월도 강물처럼 덧없이 흐르는구나”하며 세월의 무상함을 탄식했다. 일흔세살에 세상을 떴으니까 고향에서 제자들을 기른지 셋 해만이다.
나폴레옹은 조국을 빛낸 위대한 프랑스인이다. 그러나 프랑스를 더럽힌 추잡한 프랑스인이기도 하다. 1814년 유배된 엘바섬에서 탈출하여 파리에 입성했으나 그의 백일천하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 다시 유배되는 종말을 고했다. 프랑스를 유럽에 떨친 전공(前功)이 제위(帝位)에 향한 집념으로 말년을 망쳤다.
공인(公人)의 말년은 이래서 전 생애의 평가를 좌우한다. 예수, 그리고 공자같은 이는 말년을 위대하게 장식했다. 반면에 나폴레옹은 말년을 추잡하게 마무리 하였다. 이밖에도 또 있다. 예컨대 대원군 이하응은 권력에 대한 집념 끝에 청나라에 끌려가는 말년의 수모를 당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끊임없는 정치 개입의 말년을 보고 있다. 그의 마무리 생애가 볼썽 사나운 것은 그를 위해서다. 감히 예수나 공자는 물론이고 나폴레옹과도 비할바가 못한 탓인지 모른다. 마치 대원군 이하응이 보인 말년의 노욕을 보는 것 같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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