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과 더불어 ‘삼원(三園)’으로 지칭되는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1813)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원화가 중 한 명이다. 혜원이 이런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남녀간의 애정과 낭만을 소재로 한 이른바 ‘춘의풍속화(春意風俗畵)’에서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작품은 주로 기녀·무속(巫俗)·술집의 색정적인 장면 등을 그려 인간주의적 욕망을 표현했는데 벼슬은 첨정(僉正·종4품)에 이르렀다.
혜원의 춘의도는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기방의 여인들이 춘화첩을 감상하고 있는 장면, 서로 애무하느라 정신이 없는 남녀를 방문 밖에서 엿보는 어린 하녀의 모습, 여인의 옷 속을 더듬고 있는 사내의 몸짓과 표정 등을 그렸다. 혜원의 춘의도 가운데 ‘이부탐춘’이 있다. ‘과부가 봄빛을 즐기다’란 뜻이겠다. 유교이념에 철저했던 조선사회는 배우자가 죽게 되면 여인은 평생토록 수절해야 했다. 그래서 청상과부를 둔 사대부 가문에선 집안의 가장 내밀한 곳에 별당을 마련하여 거처로 삼게 했다. 그러나 겹겹의 높은 담장으로 어찌 무르익은 봄기운까지 막을 수 있겠는가.
‘이부탐춘’을 보면, 담장 밖에서 넘어 들어 온 복사꽃과 살구꽃이 농염함을 다툰다. 춘기를 못이긴 한 쌍의 개는 담장 아래로 난 구멍으로 찾아들어 운우지락(雲雨之樂)에 빠져 있고, 이에 뒤질세라 참새 한 쌍도 부산한 날갯짓으로 서로를 희롱한다. 잠시 봄볕을 쬐러 후원 마당에 나온 청상과부와 시비(侍婢)는 봄날의 정경에 넋을 놓고 눈을 떼지 못한다. 소복을 입은 과부의 품새와 야릇한 표정에서 농익은 춘심이 묻어나고, 옆에 앉은 과년한 댕기머리 처녀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짐짓 못마땅한체 하지만, 과부의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있는 앙증 맞은 손이 그녀의 심경을 말해 준다. 누가 보아도 고개를 돌릴만한 민망한 광경이지만, 혜원은 별당 후원의 은밀함을 역으로 이용하여 여과 없이 화면에 펼쳐 놓았다. 이런 정황이라 수절 과부의 절개는 그녀가 앉아 있는 앙상한 가지의 늙은 소나무만큼이나 애처롭고 위태하게 느껴진다. 담장 밖의 화려한 복사꽃·살구꽃 가지와 대비시켜 굳이 소나무 둥치에 수절 과부를 앉혀 놓은 혜원의 의도를 알 만하다. 바야흐로 꽃피고 새 우는 봄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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