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저장소

임병호 논설위원 bh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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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군대엔 이른바 ‘5대 장성’이 있다. 준장, 소장, 중장, 대장 위에 병장(兵長)이 5성(五星) 장군에 해당된다. 물론 우스갯소리지만 병장을 대장 위에 둔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없다. 자긍심이나 애교(?)로 봐 주면 그만이다. 훈련병, 이등병, 일등병, 상등병을 거쳐 병장이 되면 그야말로 ‘고생 끝’이다. 별 넷 단 대장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제식훈련, 구보훈련, 비상훈련, 사격훈련, 행군훈련 등 각종 훈련에 긴장하고 땀흘리던 ‘쫄병’시절을 되돌아보며 제대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는 맛은 평생 잊지 못한다. 애인이 있는 병장들은 하루가 한달처럼 길고 길다. 기합 받던 고통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기합 주던 호랑이 고참 또한 별로 밉지 않다. 이미 제대 하였으므로 되레 소식이 궁금해진다. 요즘 병장들은 어떻게 지낼까.

공군웹진(www.airforcre.mil.kr) ‘공감’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코너인 ‘장병생활백서’가 공군의 ‘말년병장’ 생활모습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표현했는데 재밌다. 보통 전역 2~3개월을 남겨 놓은 병장을 말년병장이라고 부르지만, 복무기간이 육·해군에 비해 긴 공군에선 9개월간 병장시절을 보낸다. 육군병장은 5개월 가량이다.

공군 말년병장의 첫 번째 유형은 ‘노라조(놀아줘)’다. 부대 안에 널려 있는 풍성한 ‘놀거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죽어라 노는 타입을 말한다. 오락기, 노래방, 사이버지식방(PC방), 보드게임을 독차지한다. 하지만 ‘맞고참(같은 계급이지만 군번이 앞서는 고참)’에 찍히면 말년 군생활이 좀 고달픈 경우도 있다.

두 번째론 ‘몸짱’형이다. 복학에 대비해 건강한 육체미를 가꾸려는 병장들이다. 일과 후 철봉과 역기, 줄넘기, 달리기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외박 때 가지고 온 헬스와 보조식품을 애용하며 근육을 만든다.

세 번째 ‘복학생오빠’형은 공부에 매달리는 학구파다. 전공은 물론 영어와 자격증 대비 등 닥치는대로 공부에 정진한다. ‘복학생오빠’들은 복학한 뒤 예쁜 여학생 후배들이 많이 가입한 스터디그룹에 스카우트되는 꿈을 꾼다. 말년병장들의 일상이 그지 없이 자유롭다. 청년시절 남자들의 24개월(육군), 26개월(해군), 27개월(공군)간의 병영(兵營)은 ‘추억 저장소’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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