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트레버 피노크 내한공연

그들은 모두 '음악의 달변가'였다.

낭랑한 소리와 명확한 발음, 논리적인 설득력. 달변가의 요건을 모두 갖춘 유러피안 브란덴부르크 앙상블(이하 EBE)의 유려한 연주에 18일 저녁 LG아트센터에 모인 음악애호가들은 넋을 잃었다.

EBE는 고악기 연주의 대가인 트레버 피노크에 의해 바흐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을 새롭게 해석하자는 취지로 조직된 특별한 앙상블인 만큼, 청중의 관심은 메인 프로그램인 브란덴부르크협주곡에 쏠릴 수밖에 없었지만, EBE의 유창한 음악적 달변은 바흐의 음악에 그치지 않았다.

첫 곡으로 연주한 헨델의 '수상음악' 협주곡 도입부에서부터 상큼한 청량감이 콘서트홀 안을 가득 채웠다. 피노크의 쳄발로를 둘러싼 EBE의 단원들은 5.1채널 스피커를 방불케 하는 생생한 입체 음향을 만들어냈고, 헨델의 음악은 숨을 쉬기 시작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카티 데브레체니의 솔로로 비발디의 바이올린협주곡이 연주되자 그 놀라운 입체음향의 비밀이 그 실체를 드러냈다.

탁월한 음악적 웅변으로 청중을 압도한 데브레체니와 EBE 현악 주자들의 무기는 바로 '활'이었다. 바로크 현악기의 활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다양하고 미세한 뉘앙스는 실로 수 천 가지를 헤아렸다.

그들의 능숙한 활 놀림을 통해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현란한 수사와 강한 억양에 매혹된 청중은 숨을 죽이고 음악을 경청했다. 연주가 끝나자 너무나도 뛰어난 연주에 매료된 청중은 음악회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브라보'를 외쳤다.

그러나 비발디의 바이올린협주곡이 전반부 프로그램에서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준 탓인지 이어서 연주된 바흐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 제5번은 상대적으로 그 효과가 다소 반감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1악장에서 독주 플루트의 음량과 표현이 다소 부족해 독주 바이올린과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피노크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쳄발로의 화려한 카덴차와 2악장에서 균형이 회복된 바이올린과 플루트의 섬세한 앙상블만으로도 청중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휴식 후 연주된 퍼셀의 '요정의 여왕' 모음곡에서 다시금 관악기와 현악기의 풍부한 어울림을 들을 수 있었다. 현악섹션의 어택과 관악섹션의 호흡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자연스럽게 공명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마지막 샤콘느에서 우아함은 절정에 달했다.

드디어 그날 연주회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바흐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 제1번이 연주되자, 피노크가 이끄는 EBE의 탁월한 음악적 통찰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현과 콘티누오 파트에 2대의 호른, 3대의 오보에, 그리고 피콜로 바이올린(바이올린보다 단3도 높게 조율된 작은 바이올린)이 편성된 제1번은 브란덴부르크협주곡 가운데서도 가장 독특한 음색과 음악어법을 보여준다. 잘못 연주하면 여러 악기들이 웅성대는 듯 혼란을 초래하는 까다로운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EBE는 이 작품의 복잡한 대위법의 그물망을 너무나 시원하고 명쾌하게 풀어헤쳤을 뿐만 아니라 각 악구들을 자신감 있는 어조로 분명하게 '발음'했다.

이 능수능란한 음악의 달변가들 덕분에 바흐의 악보 속에 잠자고 있던 불규칙한 리듬의 맥박과 변화무쌍한 악센트가 깨어나면서 바흐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반항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음악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피노크와 EBE는 다이내믹의 극적 효과나 악센트의 과장, 현란한 몸짓 등 일시적인 효과에 기대지 않았다. 그들이 재창조한 신선하고 매혹적인 브란덴부르크협주곡은 음 하나하나의 역할에 대한 오랜 기간의 탐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다.

열광하는 청중을 위해 피노크와 EBE는 헨델의 '수상음악' 콘체르토의 한 악장과 플루트 독주용으로 편곡된 바흐의 쳄발로 협주곡 2악장을 앙코르로 선사했다. 오랜만에 맛본 바로크음악의 풍요로운 성찬에 연주자와 청중 모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연합뉴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