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모습은 장관이었다. 지난달 29일 재연된 정조대왕 반차행렬이다. 서울 창덕궁을 출발, 한강대교 북단을 거쳐 노들섬까지 가진 대왕의 능 행차인 반차행렬은 한강을 배다리로 건넜다. 배를 연결하여 널빤지를 깔아만든 배다리는 한강이촌지구~노들섬 사이를 연결했다.
그러나 반차행렬은 1795년 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 참배에 이어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가진 것이 반차(班次)의 몸통이다. 그러니까 서울시가 주최한 반차는 출발에 불과하다. 정조대왕 능 행차의 몸통 행사는 수원시가 해마다 10월에 화성문화제 행사로 철저한 고증에 의해 사실적(寫實的)으로 재현하고 있다. 수원시 행사와 서울시 행사를 하나로 하여 개최하자는 말이 있었다. 말은 그럴싸 하지만 현실적으로 난점이 많아 성사가 어렵다.
그런데 고약한 것은 서울시의 반차행사 명칭이다. ‘하이 서울 페스티벌 2007’이란 명칭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조대왕의 능 행차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다. 실사구시, 이용후생의 개혁적 실학사상을 꽃피운 분이 정조대왕이다. 만조백관에 뿌리내린 탕평책은 정치적 실학사상이다. 허례허식을 타파한 것은 사회적 실학사상이다. 토지개혁을 단행, 중농정책을 편 것은 경제적 실학사상이다. 실학파문학이 만발한 것은 학문적 실학사상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박제가의 ‘북학의’, 박지원의 ‘열하일기’등 이밖에도 많은 개혁적 노작이 대왕 재위시에 나왔다. 궁중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혜경궁 홍씨의 한글 내간체 저서 ‘한중록’도 나왔다.
‘하이 서울 페스티벌 2007’ 명칭이 실사구시, 이용후생의 실학사상을 치세로 삼은 정조대왕 의중에 과연 들 것인지 궁금하다. ‘2007 서울 대축제’라고 해도 될 명칭을 굳이 ‘하이 서울 페스티벌 2007’이라고 한 것은 영어 사대주의 발상이다. 사대주의는 실학사상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서울시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그랬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다. 외국인 관광 안내서엔 영문 번역을 쓰더라도 고유명칭은 우리말로 쓰는 것이 대왕에 대한 예의범절이다. 이를 어긴 것은 또한 서울시민에 대한 예의범절이 아니다. 서울 시민들 가운데도 ‘하이 서울 페스티벌’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사람이 상당할 것이다. 서울시는 공공단체다. 공공단체의 영어 남용이 마치 천민지식(賤民知識)의 극치같아 영 씁쓸하다./ 임양은 주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