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인간의 선악에 대한 양면성을 묘사했다. 19세기 말 영국의 스티븐슨이 쓴 작품이다. 의사인 지킬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악을 분리 확대하는 약을 먹고 극악스런 하이드가 되어 악행을 일삼는다. 이런 실험을 거듭하다가 면역성이 생겨 착한 본래의 지킬로 되돌아 가는 약을 아무리 먹어도 돌아가지 못한다는 줄거리다.

맹자(孟子)의 성선설, 순자(荀子)의 성악설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루소의 자연주의는 성선설을 바탕으로 한다. 소크라테스의 지행일치(知行一致)는 성악설에 뿌리를 둔 자기계발이다. 중용(中庸)은 중립이 아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 중용이다. 중용의 도덕론은 이래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덕론’(德論)의 중심 개념이 또 이와 같다. 이성에 의하여 욕망을 통제하고, 지견에 의하여 과대와 과소의 양극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선악의 양면을 갖는다. 평생동안 항상 선한 사람도 없고 평생동안 항상 악한 사람도 없다. 악인도 동정심을 가질 때가 있고, 선인도 이기심을 가질 때가 있다. 문제는 그같은 경우의 장합(場合)이다. 그리고 선악의 행위 중 어느 것이 많고, 행위의 품질이 어떠냐에 따라 인간의 평가가 달라진다.

인격자로 보이는 사람에게도 버려야 할 단점이 발견될 때가 많다. 반대로 비인격자 같아도 새겨 둬야 할 장점을 보일 때가 있다. 인간은 이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 반성이 요구된다. 반성을 모르는 사람에겐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죽을 때까지 배워가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인간의 내부에 잠재된 선악의 모순과 갈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일어나는 성격 분열로 파멸돼가는 것을 형상화 했다. 즉 중용의 이행이 미흡한 흠결인 것이다. 칸트의 실천철학 또한 도덕적 실천을 사유의 근거로 삼고 있다.

현대인 사회의 가장 큰 결함이 양극화로 치닫는 극단주의인 것 같다. 중용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균형 파괴가 개인이나 가정 파괴, 국가사회의 파괴 현상을 가져오고 있다. 공공의 안녕질서, 사회방어를 위협하는 갖가지 범죄도 이에 기인한다. 기계문명과 물질문명의 발달이 인간을 공동선에서 공동악으로 내모는진 모르겠으나, 이래선 인간사회의 미래가 척박하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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